저는 글을 읽을 때 속으로 한 음절씩 따라 읽는 편입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남들에 비해 글을 아주 빨리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 덕에 오탈자를 잘 찾아내는 편입니다. 이게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닐 땐 별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일을 할 땐 꽤 유용한 능력이더라고요. 프로그램 수만 자 중에 한 글자라도 틀리면 바로 에러가 나니깐요.
행정고시를 공부할 때도 학원 교재나 자료에 있는 오탈자가 눈에 잘 띄었습니다. 저는 그걸 또 정리해놨다가 교재 개정판이 나올 때 반영해달라고 학원 선생님께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감사하다면서 그다음에 나올 교재도 미리 검수 좀 해달라는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기꺼이 도와드린다고 했고, 몇백 개의 오탈자를 찾았습니다. 그 덕에 기대도 안 했는데 다음 강의는 무료로 수강했었습니다. 고시생이었을 때도 오탈자에 대해선 오지랖이 넓긴 했네요.
사실 오탈자를 잘 보는 능력은 공무원으로서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제가 공무원에 잘 어울리나 봅니다. 보고서를 쓸 때도 그렇지만, 특히 법령을 개정할 때는 오탈자가 있는 게 굉장히 치명적인 일인데 이럴 때 제가 오류를 잘 잡아냈습니다. 일단 글에 오탈자가 있으면 그 글에 대한 신뢰도가 확 떨어지잖아요. 제가 쓴 문서에는 그런 일이 자주 있진 않아서 그런지 실제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제가 오탈자를 내거나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할 때면 과장님께서 그걸 보시고 엄청 즐거워하십니다. 정말 보기 드문 실수를 찾은 것처럼 말이죠.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이 사무관이 또 과장이 열심히 보나 안보나 테스트하려고 이런 깜찍한 걸 숨겨놨네"라고 말씀하실 때면 정말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합니다.
"과장님, 저 꼼꼼한 편 아니거든요. 그러니깐 과장님께서 지금처럼 자세히 봐주셔야 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