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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r 26. 2022

주말마다 만나는 과장님

저는 평일 야근보다는 주말 출근을 선호합니다. 평일에 8시간 일한 후 2~3시간 더 일하는 건 단순히 경제학적으로 따져도 한계 생산성이 떨어져서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거든요. 평일에 야근을 한다면 6시 반에서 7시 정도까지 일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와서 8시부터 10~11시 정도까지 일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때는 지친 상태에서 업무 효율도 떨어지거니와, 특히 여름이나 겨울에는 저녁에 에어컨이나 난방을 안 틀어주기 때문에 정말 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주말로 일을 미루더라도 평일은 최대한 일찍 가려고 합니다.


주말에 나오더라도 아침 일찍 나오는 걸 선호합니다. 어차피 늦잠을 잘 텐데 그 시간에 일을 해두면 다음 한 주가 편안해지면서도 주말을 누릴 수가 있으니깐요. 그리고 주말 저녁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오전에는 정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조용하게 남들 방해 없이 일을 할 수 있거든요. 다만, 아침부터 시작해도 저녁까지 일을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긴 했습니다.


예전에 과장님과 주말 출근으로 얽힌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일이 너무 많아 매 주말마다 출근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말 오전의 사무실은 온전히 제 세상이었죠. 하지만 과장님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 과장님은 일요일 오전마다 사무실로 출근하시더라고요. 과장님은 2~3시간 정도 조용히 일하시다가 나가셨습니다. 저희 과원은 아무도 몰랐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때 같이 사무실에 있었으니깐요. 


처음에는 불편했습니다. 저 혼자 있을 땐 머리가 안 돌아가면 과장님 자리에 있는 회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 들고 창 밖 전경을 보며 사색하듯 똥폼을 잡고 그랬는데, 이제는 자리에 앉아 일만 할 수밖에 없었죠. 언젠가부터 과장님이 편해지기 시작하자 과장님이 계신 김에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평일에는 과장님이 바쁘셔서 중요한 것 위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단 둘이 있다 보니 사소한 거라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거든요. 과장님께서도 여유가 있으니 차근차근 하나씩 잘 알려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과 회식 때였습니다. 술이 좀 취하신 과장님은 저와 과원들 앞에서 자신의 고민을 말하셨습니다.


"나는 일요일 아침에 가족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와서 2시간 정도 일하는데 그게 참 좋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지나간 주를 정리하고 다음 주를 계획하는 게 참 힐링되는 시간이었거든. 그런데 요즘 이 사무관이 일요일에 출근해서 자꾸 뭘 물어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요즘은 카페로 간다."


어쩐지 요즘은 일요일에 잘 안 나오시던데 그 이유가 저 때문이었다니. 그래도 좀 억울해서 "저는 과장님께서 새로 오시기 전부터 일요일 오전에 출근했거든요"라고 반박할까 생각해봤지만, 또 마음 약하신 과장님께서 저에게 뭐라 말씀도 못하시고 카페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저는 과장님께서 나오셔서 좋았습니다. 평소에 못한 대화도 많이 하고, 또 외롭지도 않아서요."


저도 그날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고 시간도 오래 지난 터라 그 후의 일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결과적으로 그 후에도 과장님께서 저를 많이 이뻐하셨으니 잘 마무리된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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