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으로 일하면서 나쁜 버릇이 생겼습니다. 다름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끊는 것입니다. 사무관이 되기 전까지는 남의 말을 중간에 끊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상대가 다 말할 때까지 경청하고 기다려주는 게 당연한 예의였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업무 중에 확인할 게 생겨서 전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최대한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가끔 상대가 제 물음에 바로 답을 주지 않고 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후에야 제가 했던 질문을 다시 물어봤죠.
언젠가 일이 너무 바빠서 답만 딱 필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가 바로 답을 알려주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가 의도치 않게 '저 정말 죄송한데요'란 말이 나와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상대가 이야기를 바로 멈추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에게 '사무관님, 말씀하세요'라면서 제 말을 기다렸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폭력이었단 걸.
시작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상대방이 조금만 딴 이야기를 한다 싶으면 바로 말을 끊었습니다. 그 상대가 저보다 직급이 낮거나 아님 저희에게서 보조금을 받는 곳이었다면 더 쉽게 그랬죠. 갑과 을이란 권력관계를 이해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민원인이 전화한 경우에는 말씀을 들어주는 것이 제 일이었기 때문에 말을 끊진 않았습니다)
최근에 나이가 꽤 있으신 다른 부처의 서기관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부처에서 저희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서기관님의 설명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또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단칼에 말을 자른 후 제가 필요한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서기관님께서는 화도 내지 않고 고분고분히 제 이야기를 들으셨죠. 순간 제 행동이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갑이란 지위에서 을에게 막 대하는 행동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그렇게 비판했었는데, 저도 그런 사람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언제까지 계속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자리로 옮길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퇴직을 하게 되겠죠. 과거에 권한이 좀 있었다고 퇴직하고도 갑처럼 굴었다간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늦게라도 운 좋게 깨달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더 조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