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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11. 2021

사무관의 정책 보고서 쓰기

사무관은 다양한 업무를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가장 기억에 남기도하고, 저를 많이 성장시켰던 일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정책 보고서 작성하는 법을 혹독하게 배웠거든요.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국장님께서 저에게 우리나라 의료비가 진짜 높은 건지 궁금하다며 한번 알아보라고 지시를 하셨습니다. 저는 인터넷을 검색해 1장으로 정리해서 가져갔었습니다.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성의가 없었다는 거죠. 평소 그렇게 인자하시던 국장님께서 화를 내시며 다음 주까지 20장 분량으로 가져와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두 달이 걸렸습니다. 주말 없이 매일 새벽 1시에 퇴근하면서.


먼저 과장님께서는 제가 보고서를 쓸 수 있도록 1:1 과외를 해주셨습니다. 통계 자료를 가져와서 체계적으로 저장하는 법, 자료를 분석해서 의미 있는 내용을 뽑아내는 법, 그래프를 효과적으로 그리는 법까지. 저는 OECD 사이트에서 의료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엑셀로 받아와 소위 삽질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도 묶어보고 저렇게도 묶어보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고 하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인터넷으로 구하기 어려운 자료는 여러 연구기관에 요청해서 받았습니다. 건강보험연구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직접 찾아가 책자로 받아오기도 했고, 서울아산병원에 찾아가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게 다 제가 사무관이라는 직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갑질처럼 느껴질까 봐 정중하게 요청을 드렸지만, 상대의 속마음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 동안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3장 정도 보고서를 써가면 과장님께서는 그중에 3줄만 살리고 나머지는 필요 없다며 다 지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중엔 제가 쓴 걸 인정받아야겠다는 오기로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삭제되었죠. 그 작업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한 장도 못쓴 적도 있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제가 무엇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죠.


두 달이 지나 과장님과 함께 약 30여 장 되는 보고서를 완성했을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정책방향을 정리한 보고서였습니다. 다만, 얼마 안가 제가 다른 보직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그 보고서를 활용해서 정책을 추진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아마도 후임자가 잘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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