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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y 04. 2022

제가 완벽주의자라서요

코로나가 잠시 풀렸을 때 동네 복합커뮤니티센터에 수영장을 등록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새벽반에요. 미라클 모닝도 거뜬히 했던 저였기에 새벽 수영장이라도 잘 다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상은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영 등록에 성공했는데, 수영장에 나가질 못했습니다. 늦잠을 자서도 아니었고, 코로나가 심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안경점에서 도수가 있는 수경을 주문 제작하느라 며칠을 날렸던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수경이 와서 수영장에 가려고 봤더니 올인원 샴푸가 없어서 주문했고, 샴푸가 와서 보니 그걸 담을 수영 가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에 물건 하나씩 사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완벽히 준비가 안 된 채로 수영장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수영장에 갈 세팅을 마치고 나니 2주가 지나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가면 충분하니깐요. 혹시 늦을 수도 있을까 봐 강습 날이 아닌 날에 일어나서 수영장에 가보는 예행연습도 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영장에 가려고 할 때마다 바쁜 일이 생겨서 못 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강습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보면서 누구냐고 묻더군요.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수강생이라며 참석했으니 선생님도 당황하실만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보고 사무실에 가서 함께 명단을 확인해보자고 하셨고, 그 후에야 제가 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강습 중에도 저를 낯선 사람 보듯 하는 사람들의 눈빛에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수영도 오랜만이어서 사람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꼴찌로 들어오고, 돌아와서도 혼자만 헥헥거렸습니다. 마칠 때 다 같이 둥글게 모여 손을 잡고 구호를 외치는데 저는 그것도 몰라서 어버버 하다가 인사 타이밍도 놓쳤습니다. 불성실하지, 실력도 없지, 센스까지 부족한 모습에 감히 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강습이 한 번 더 남았지만 도저히 갈 마음이 안 생기더라고요. 결과적으로 한 달 동안 딱 한 번 가고 그만뒀습니다. 처음엔 장비가 준비되지 않아서 안 갔고, 막상 갔더니 그다음엔 잘할 자신이 없어서 못 갔습니다. 동네 뒷산에 한 번 올라가는데도 온갖 전문 장비를 다 구입한다는 아저씨 이야기를 들었을 땐 웃었는데, 그 아저씨가 바로 저였습니다. 제 아내도 저보고 완벽주의자라 그런 것 아니냐며 놀리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그랬습니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일단 넘어갔다가 다음에 다시 봐야지, 이해도 안 되는데 무작정 잡고 있으면 시간만 버리게 됩니다. 저는 그걸 알면서도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 이해가 다 되어야지만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 같이 공부한 동생들이 저보고 그래서 장수하는 것 아니냐며 놀렸었죠. 어쩌겠습니까. 원래 성향대로 살아야겠지요. 날씨도 더워지는데 다시 수영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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