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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y 08. 2022

당신은 내 말을 이해하고 있나요?

대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을 하는 방법 등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나서 생각할 것들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서로 말을 나누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상대의 말이 이해가 안 될 때는 물어보면 됩니다. 대화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저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상대가 티를 안 내는 이상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대학원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 한 작은 IT 업체와 협업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업체 부장님과 회의를 자주 했습니다. 교수님은 저희와 몇 주를 연구해서 나온 결과에 대해 부장님과 말을 나누었죠. 


문제는 옆에서 보기에 부장님이 하나도 이해를 못 한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교수님은 온갖 약어와 어려운 용어들을 써가서 말을 했고 부장님은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부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완전 딴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수님과 부장님은 말만 섞었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웃긴 건 아무도 그 부장님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말하지 못했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단 말을 할 사람이 없었던 거죠. 슬프게도 그 기업이 얼마 못 가 망했단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행정고시 2차 시험을 합격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한 달 후에 면접을 봐야 했죠. 2차 합격생들은 면접 스터디를 꾸려 한 달 동안 죽어라 면접 준비를 했습니다. 인맥을 동원하여 현직 사무관들을 부르고 면접에 대한 팁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 보이는 스펙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나름 좋은 대학에 석사까지 졸업하고 회사 경험도 있었으니 대학 졸업 후 고시 공부만 했던 친구들에 비해선 괜찮았죠. 그런데 평소 생활하는 모습에서는 허당기가 있었습니다. 스터디 동생들에게는 편안하고 만만한 동네 형이나 오빠 같았죠. 그래서 함께 면접을 함께 스터디한 동생들은 저에게 좋은 스펙에 맞는 사람처럼 지적인 모습을 강조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행안부에서 오셨던 현직 사무관님이 저의 면접을 봐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면접을 보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서 각색을 좀 했지만 말의 핵심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단 2차 시험을 합격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지적인 능력은 증명이 된 것입니다. 거기다 킹오황님은 석사에 논문에 프로그래머 경력까지 정말 스펙만 보면 화려하네요. 그럼 굳이 똑똑함이나 꼼꼼함 같은 것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력만으로 충분히 전달이 될 것입니다. 면접관이 원하는 건 이런 공부만 해온 것 같은 사람이 얼마나 조직에 잘 융화될 것인지 일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는 어떻든 사교적이라던지, 조직에 잘 융화된다던지, 리더십이 있다던지 하는 부분을 강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하나 맞는 지적이었습니다. 면접관은 저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하니깐, 그 사람들이 저를 얼마만큼 아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저의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제가 얼마나 아는 지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얼마나 아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모르는 것 같은 낌새라면 상대 기분을 상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 정보를 알려줘야 합니다. 그것도 모르냐며 구박하고, 저의 지식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요.



"사무관님도 당연히 아시는 내용이지만 제가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게 잘 알려지지 않았긴 한데,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이 부분은 서로 생각이 다른 것 같기도 한데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죠."


저는 이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정보를 주곤 합니다. 주변에서 저의 전화 통화를 듣고서는 이럴 때 상대에게 한 마디 하던지 아니면 직접 찾아보라고 해야지 매번 다 알려주고 너무 친절한 것 아니냐는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빨리 일이 해결되길 원하지 나도 아는 걸 너는 왜 모르냐란 걸 굳이 밝혀서 상대방과 감정싸움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그래서 원래 성격이 그렇다고 말하고 넘깁니다. 어쨌든 소통하려고 대화하는 것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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