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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Sep 10. 2022

실수도 실력이다

행정고시 2차 시험은 5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매일 한 과목을 2시간씩 5과목을 다 보고 나면 끝이었죠. 2차 시험을 총 세 번 보았습니다. 면접에서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상 2차 시험이 행정고시의 메인이었습니다. 2차 시험은 서술형으로 100점 만점에 4~5문제 정도 나왔습니다.


처음 보는 2차 시험에서는 당연히 합격의 기대를 하지 않았죠. 솔직히 그래도 답안을 10장 꽉 채웠는데 꽤 괜찮은 점수를 받지 않았을까 했었습니다. 결과는 합격 커트와 평균 5점 차이가 났었고, 이 점수는 아무리 초시생이라 하더라도 합격과 거리가 꽤 멀었습니다. 차라리 낮은 점수를 받아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고 생각이 드는 게,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 계기가 되었죠.


이번에 말하려는 건 사실 두 번째 시험입니다. 합격생의 공부기간을 살펴보면 보통 2년에서 3년이 가장 많더라고요. 합격할 사람들은 보통 2~3년 차에 합격한다는 뜻입니다. 저도 두 번째 시험은 그래도 꽤 큰 기대를 했었죠. 시험을 볼 때도 기분이 괜찮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크게 실수한 것도 없고 묻는 건 다 작성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일째 재정학 과목을 보는 중이었습니다. 4문제가 나왔는데 앞에 3문제까지 무난하게 풀고, 마지막 문제를 보니 교과서에서 본 쉬운 문제였습니다. 안심을 하며 답을 풀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해도 제가 생각한 답이 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내가 어떻게 2년을 공부했는데 이 한 문제 때문에 다시 1년을 준비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문제면 그냥 풀겠는데 아는 문제라서 더 긴장했었죠.


결국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채 손을 덜덜 떨며 엉망진창으로 답을 적었습니다. 내가 아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유형인가 보다란 생각을 하면서요. 시험이 끝나고 고시촌으로 돌아오는데 스터디 동생을 만났습니다. 그 동생에게 4번이 너무 어려웠던 거 같다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 나온 거 아니냐 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암산으로 바로 답이 나왔습니다. (그 정도로 쉬운 문제...)


힘이 쭉 빠졌습니다. 한 문제라도 날리면 합격과 거리가 멀어지는데. 내일 한 과목 시험도 치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집에서도 다음 날 시험공부도 안 하고 그냥 누워만 있었습니다. 다시 1년을 준비할 생각만 했습니다. 밤에 잠도 안 오는데 억지로 자리에 누워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밤 12시에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벨 소리에 깨서 친구에게 화를 냈습니다. 2차 시험 기간인 걸 너도 잘 알면서 이러는 거냐고. 그 정도로 화낼 일이 아닌데 괜히 아침에 제가 잘못 푼 것 때문에 그 친구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죠. 그땐 예민했던 고시생이었으니 엄청 쏘아붙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 서먹한 관계로 남아 있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 문제를 풀었다면 합격했을 점수가 나오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군요. 합격생들도 1~2문제씩 실수를 한다고. 그래도 합격할 수 있어야 진짜 합격할 자격이 있는 거라고. 그 말이 꽤 위안이 되어서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합격할 때도 1문제를 제대로 못 풀었지만 다른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커트라인을 넘길 수 있었죠. 실수도 실력인 걸 여실히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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