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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Sep 01. 2022

일은 일일 뿐인데

저랑 사사건건 마찰이 있었던 사무관님이 있었습니다. 50대 중반쯤 된 분이었는데, 정작 일은 다 밑에 주무관에게 맡기고 외부 회의만 다니시면서 제가 뭐 하자고 하면 항상 반대만 하셨던 사무관님이었습니다. 전화해서 업무 이야기 좀 하자면 다 주무관님에게 맡기시고 어디론가 나가버리셨었죠. 그러면서 제가 필요하면 바로 저에게 연락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중앙부처에 저렇게 얄밉게 일하시는 분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부처를 떠나게 되면서 부처 전체를 한 바퀴 돌면서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무관님에게도 인사를 하러 갔는데 마침 사무관님이 자리에 계셨습니다. 딱히 사이가 좋진 않았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무관님은 약간 아쉬운 듯 말씀하시더군요. 의외였습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나한테 너무 악 감정 가지지 마, 일은 일일 뿐이야. 다 자기 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잖아. 그래도 나랑 함께 일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수고 많이 했어!"


저는 아리송했습니다. 일은 일일 뿐이니깐, 함께 일 하는데 좀 기분 좋게 사이좋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사무관님이 섭섭해하는 모습을 보이니깐 마음이 좀 착잡하더라고요. 거기다 결정적으로 제가 결혼할 때 어떻게 알았는지 계좌로 축의금까지 보내주시는 바람에 그분에게 쌓인 감정이 다 풀려버렸습니다. 그래요, 뭐 우리가 일 하다 만난 사이인데 사사롭게 감정까지 상할 필요는 없죠.




최근에 한 사무관님이랑 사내 메신저로 대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부처에 많은 직원들에게 욕먹는 거 같아 힘들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 자리가 다른 국의 국장님 결재를 받은 걸 사무관이 다시 검토해서 지적하는 좀 특이한 자리였거든요. 저는 사무관님은 자기 일을 하는 것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냐며, 그 자리가 원래 욕먹는 자리 아니냐고 그랬습니다. 사무관님은 저보고 자리 탓이라고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자기가 나쁜 사람은 아닌지 계속 고민했다더군요.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 실망하거나 상대방이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상대방에게도 그런 행동의 이유가 있었겠죠. 자기가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니깐요. 일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상대방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기보단,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여유를 가지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새삼 저에게 미움을 받았던 그 사무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일은 일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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