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실에서 유튜브 홍보 동영상을 찍겠다며 한 연예인을 섭외했습니다. 직원들도 함께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저희 국에선 후배 사무관이 대표로 선정되었습니다. 연예인과 대화를 한다는 말에 살짝 부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저보단 젊고 말도 잘하는 후배가 하는 게 맞는 거라며 자기 위로를 했었습니다.
촬영 날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는 일이 있어서 점심도 안 먹고 불 꺼진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변인실 서기관님이 들어오시더니 저보고 지금 촬영 가능하냐고 묻더군요. 자초지종은 이러했습니다. 촬영하기로 한 연예인이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촬영 시간이 예정보다 앞당겨졌는데, 원래 촬영하기로 했던 후배 사무관은 점심 먹느라 그런지 연락이 안 된다며 저보고 대타를 뛰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마음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대본도 전혀 숙지가 안 되어 있었고,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도 엉망이었거든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점심 때라 그런지 사람 섭외도 어려운 상황인데 협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 연예인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말을 걸 거니 거기에 따라 잘 대답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니, 대본도 없이 애드리브를 쳐야 하는 것이라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미 한다고 했으니 물릴 수도 없었죠.
덜덜 떨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촬영팀이 우르르 들어오고 곧바로 연예인도 왔습니다. 화면에 비해 머리는 작은데 눈코 입은 커서 잘생겼더라고요. 보자마자 바로 '잘생겼네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막 여러 가지 묻는데 다 제가 모르는 것들이라 제대로 대답도 못 했습니다. 정신없이 대화하다가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났습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저보고 줄임말 아는 게 있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낄끼빠빠'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저도 나름 사무관인데 유튜브에 박제당할까 봐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사무관으로서 말할 만한 적당한 줄임말이 뭐가 있나 엄청 고민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분이 매정하게도 "아, 역시 일하시느라 바빠서 그런 건 모르시는군요!" 하면서 대화를 끝내버렸습니다. 사실 저도 줄임말 많이 아는데... 연예인에게 일만 하는 고지식한 공무원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쨌든, 주변에 촬영을 지켜본 사람들은 (매 질문마다 모른다며 당황하던) 저를 보고 재미있었다며 위로의 말을 해줬습니다. 나중에 최종 영상을 보니 나름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는데 딱 한 컷 나오더군요. 원래 영상은 편집하면 다 잘려나가는 거지 하면서도 좀 섭섭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제가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준비를 못했던 게 아쉽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