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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은 잠시뿐

by 킹오황

최근 몇 달 중 가장 바쁜 때를 보내고 있는 지금,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에 짬을 내서 잠깐 카페에 쉬러 왔습니다. 마침 비도 와서 주변에서 가장 조용한 카페를 찾았죠. 잔잔히 흐르는 음악과 빗소리를 들으며 읽다 말았던 책을 펼쳤습니다. (정확히는 아이패드 미니에서 밀리의 서재 앱을 켰죠) 그 카페는 찾아오기 불편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손님도 많이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조용히 책을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휴식을 찾아온 저에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당시 제가 한창 재미있게 보던 책은 스웨덴 작가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였습니다. 20대 때 대기업 임원을 그만두고 승려로 17년을 살다가 또 그만두고 제3의 인생을 살아온 이야기인데, 저같이 바쁘게 앞만 보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넓은 마음으로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단 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저자는 주변을 꼭 통제할 필요는 없다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힘을 빼고 활짝 펴는 손동작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고 힘을 빼라는 의미였죠. 안 그래도 저는 일을 할 땐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하려는 스타일이었기에 저에게 딱 필요한 충고였습니다. 책을 보면서 주먹을 쥐락펴락 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나를 위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와 옆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곁눈으로 넌지시 봤더니 가족 모임 같았습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을 중심으로 어머니와 아들 둘, 딸까지 이렇게 5명이 동그랗게 앉았습니다. 그들은 가족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면서요.


그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토론이었겠지만, 그것이 잔잔하고 행복했던 저의 휴식 시간을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소심한 사람이라 조용히 해달라는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며 억지로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었죠.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오니깐 마음으로는 자꾸 그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끓어오르는 화를 삼키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으면서 동시에 그들에 대한 미움은 커져갔습니다. 왜 내가 이래야 하나 하면서요.


그러다 책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방금 전까지 주변을 통제하려 하지 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면서, 얼마나 지났다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마음에 남들이 보지 않도록 손을 테이블 밑에 숨기고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습니다. 주변의 소음에 예민하게 굴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서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했습니다. 솔직히 책에서 읽은 것처럼은 잘 안 되더군요. 그래도 계속 쥐었다 폈다 했습니다. 될 때까지 했습니다. 한참 지나서 그들이 나가고 나서야 손동작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다시 카페는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별 것 아니었더라고요. 방금 전까진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미운 감정이 들어서 하마터면 한마디 할 수도 있었던 나름 위기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미움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게 당시 들뜬 저의 마음을 가라 앉히진 못했지만, 최소한 그런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큰 일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죠. 그렇게 알듯 모를듯한 깨달음을 얻은 휴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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