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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 해수욕장에 갔던 날

by 킹오황

때는 지금부터 약 20년 전.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머리를 노랗게 하얗게 염색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남들이 보기엔 좀 노는 애들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실상은 정 반대였다. 겉모습과 달리 우리는 전교에서 몇 등 안에 들던 범생이들이었다. 오토바이를 탈 때도 헬멧을 꼭 쓰고 다녔고, 신호등도 잘 지켰다. 오토바이도 학교가 넓다 보니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나도 중고 VF125를 운 좋게 싸게 산 후 그 무리에 껴서 다녔다.


어느 더운 날 밤,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가 오토바이로 무창포에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때 있던 사람은 6명, 오토바이는 3대. 한 오토바이에 두 명씩 타고 무창포를 향해 떠났다. 그땐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지도 한 장만 믿고 오밤중에 떠난 게 참 무모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공주 어느 허름한 주유소 앞에서였다. 몇 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타다가 지쳐서 잠깐 쉬면서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은색 각 그랜저가 우리 앞에 와서 섰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각 그랜저는 무서운 사람들이 타는 차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랜저의 창문이 천천히 내려왔다. 안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그랜저는 떠났다. 우리는 해코지를 당할까 봐 무서워서 서둘러 도망쳤다. 그렇게 무창포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나중에 우리끼리 그랜저의 정체가 뭔지 논의를 해봤는데, 형형색색의 머리 스타일 때문에 우리를 다른 지역의 양아치로 오해를 산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가까이 와서 우리 행색을 자세히 보고는 양아치보단 범생끼가 흐르는 대학생으로 보고선 그냥 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본 거여서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창포 해수욕장에 도착할 때쯤에는 날이 꽤 밝았다. 솔직히 제대로 도착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어쨌든 새벽 1시부터 4~5시간을 달려 도착한 것이었다. 우리는 근처 슈퍼에 가서 컵라면이랑 이것저것 사서 먹었다. 밤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국도를 몇 시간 달려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평상에서 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랑 낚시라도 해볼 거라고 낚시도구 같은 걸 사서 미끼를 던져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20년 전 일이니깐 대부분의 기억은 재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나는 매일 늦지 않게 출근하고, 일이 끝나면 퇴근한다. 일이 많으면 주말에도 출근하고, 그렇지 않으면 근처에 맛집과 근사한 분위기의 카페를 찾아다닌다.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독서하는 것도 즐긴다. 가끔 글도 쓰고 말이다. 이런 나도 20년 전엔 나름 돌발적인 행동도 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지금 나같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예전에는 남들이 들으면 '진짜 그랬어?'라고 할만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 평범함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통에 다 잊고 지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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