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몰랐던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에어컨 없이 일하는 것. 여름에 국가적으로 전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청사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가끔씩 더워 죽겠는데, 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데도 에어컨을 안 틀어주는 날에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한 여름에 청사에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날도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청사관리소는 아예 완전 더운 날엔 당연히 에어컨을 틀어주는데, 좀 애매하게 덥거나 비가 와서 기온은 높지 않은데 습도만 높은 날에는 잘 안 틀어준다. 그땐 업무 집중이 하나도 안 된다. 덥다고 소매를 걷으면 팔에 난 땀이 책상에 들러붙어서 마우스를 쓰는 것도 짜증이 난다. 거기다 에어컨도 딱 업무 시간에만 틀어주기 때문에, 일이 많아서 좀 일찍 출근하거나 야근하는 날에는 더워서 일의 효율성은 바닥을 친다고 봐야 한다.
#1
몇 년 전에 모 부처에서는 2인당 선풍기 1대를 썼다. 그때 난 신입이어서 정장 차림으로 갖춰 입고 다녔었는데 여름에는 와이셔츠가 땀에 축축해질 정도여서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개인 선풍기는 사용을 못하게 했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일은커녕 가만히 있기도 힘들었다. 신입의 패기로 과 서무에게 1인당 1 선풍기 좀 해달라고 요구했었는데, 과 서무는 청사관리소 지침에 따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운영지원과에 연락해서 그 공문 좀 보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2인당 1 선풍기인걸 확인하고 충격을 크게 받았다) 나중에 친한 주무관님이 알려줬는데, 운영지원과에서 날 요주의 인물로 봤다더라.
#2
사무관 초년 차 때는 아무리 더워도 긴 팔 흰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다. 공무원은 좀 더워도 복장을 단정히 하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킷은 안 입더라도 와이셔츠는 꼭 챙겨 입었다. 그게 내가 허락한 간소한 복장의 한계였다. 그런데 몇 번의 여름을 겪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사무실이 너무 더웠던 것이었다. 예의 차리려다 일을 못하게 생겼다.
그래서 보고가 없는 날엔 반팔을 입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팔 와이셔츠로 시작했다. 그런데 카라가 있는 와이셔츠도 더웠다. 어차피 반팔인데 뭐 어때 하면서 점점 옷이 가벼워졌다. 한번 라운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더니 그나마 버틸만했다. 처음엔 좀 걱정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은 뭘 입나 두리번거리며 살펴봤는데, 생각보다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나처럼 안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지금은 짬이 좀 찼다고 반팔도 자주 입고 다닌다. 언젠가 반바지를 입는 날도 오겠지?
#3
최근 한 달간 일이 많았다. 지금 내 업무 특성상 여름과 겨울에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번 여름은 작년보다 더웠고 일도 많이 몰려서 유독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지난달엔 주말 내내 출근했다. 원래 야근보단 주말 출근을 선호해서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야근을 하고 싶어도 더워서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6월 중순부터 낮에 출근하니깐 반팔에 반바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마와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땀 흘리며 일해야 하나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저녁에 출근하게 되었다. 오후 5시쯤 갔더니 그래도 버틸만했지만 여전히 더웠다. 한 번은 오전 7시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정말 시원(?)했다. 그 후론 계속 아침에 출근하게 되었다.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주말 아침. 누가 보면 워커홀릭인 줄 알겠지만, 사실 더워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