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이에 비해 가끔 어리숙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고시 공부 하느라 생물학적으로 나이는 먹었지만, 사회생활은 제 나이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2-30대 동생들에게 나잇값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럼 나이에 비해 어려 보여서 그런 걸거야라며 자기 위로를 하죠. 어쨌든, 주변에서 저를 나이 든 사람으로 안 봐서 그런지 제 스스로도 제가 좀 어리다는 착각을 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사실 나이가 꽤 든 아저씨인데도 말이죠. 그럼에도 이럴 때 제가 40대임을 실감합니다.
#1
세종청사 앞 식당 상가 중앙타운, 점심때만 되면 매우 북적이는 곳입니다. 점심을 다 먹었을 때쯤이면 아저씨들이 상가에서 우르르 나오는데, 다들 입술에 이쑤시개를 하나씩 물고 있습니다. 저는 식당 계산대에 왜 이쑤시개가 있을까, 누가 쓸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으셨던 것이죠. 다만, 방금 밥 먹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이에 낀 음식물을 이쑤시개로 꺼내는 모습을 보게 되면, 전 익숙치가 않아서 그런지 고개를 돌리게 되더라고요. 좀만 참았다 사무실에 가서 양치하시지 하면서요.
그랬던 제가 언젠가부터 고기를 먹고 나면 이 사이에 자꾸 뭐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빈도가 잦아지고, 점점 이에 낀 게 잘 빠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양치를 할 때 의식적으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닦아야 했죠. 가끔은 양치로 잘 빠지지 않으면 남몰래 손톱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중앙타운 아저씨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이 사이에 음식물이 끼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물론 저의 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젠 그분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래의 내 모습이겠구나 하면서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2
얼마 전에 처음으로 건강검진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습니다. 40이 넘으면 한 번은 하는 게 좋다고 하길래 큰 마음을 먹었는데요. 대장내시경도 문제지만, 사실은 그걸 준비하는 과정이 더 힘들었습니다. 포카리스웨트 맛이 나는 약을 그것도 500 미리리터를 2통이나 마셔야 했거든요. 급히 마시면 토할 수도 있대서 30분간 조금씩 마셨는데, 끝에 한 두 모금은 결국 못 마셨습니다. 쪼끔 남았다고 후루룩 마시다가 토할 뻔했었거든요. 그 담으로 바로 물을 1리터 마셔야 했는데, 그러니깐 바로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들락날락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읽은 대장내시경 후기에서 항문으로 오줌 누는 것 같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죠.
예전엔 인터넷으로 대장내시경 받은 썰을 볼 때마다 저는 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30대까지만 하더라도 난 대장내시경은 정말 최대한 늦게 받을 거라고 다짐했죠. 몇 년 전에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받던 환자가 죽을힘을 다해 '으아아악~' 하고 소리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엔 침묵이 맴돌았고, 간호사는 원래 저 정도는 아닌데 저 환자분이 좀 과장한 것 같다라며 저희를 달랬죠. 그때도 저는 대장내시경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을 때 받을 거라고 했죠. 그랬던 제가 얼마 전에 받았습니다. 저도 40이 넘었으니 이제 받을 나이란 거죠.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습니다. 5년 후에 다시 오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