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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반말과 존댓말

by 킹오황

내가 사무관이 되었을 때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는 언어였다. 정확히는 반말과 존댓말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였다. 나도 회사를 다녔지만, 거긴 중소기업이라 규모도 작았고, 학교 선후배들이 많아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편하게 반말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팀장이라 해도 나보다 4살 많은 정도여서 형이나 다름없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았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민간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대학원 후배가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 친구분이 고위공무원이셨는데, 그분이 전화든 현실에서든 존댓말을 쓴 걸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고위공무원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지만, 이제는 내가 공무원이 되었으니 공직 문화의 분위기를 빨리 파악했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과장님은 사무관이나 주무관에게도 ‘A사무관님’, ‘B주무관님’이라며 존칭을 쓰셨다. 반면에 바로 ‘야’로 시작하신 과장님도 계셨다. 사바사(사람 by 사람)란 결론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주변에서 들은 것까지 종합해서 분석해 부처별로 경향성이라도 말해보려고 한다.



먼저, 모 부처는 고시 기수에 따랐다. 기본적으로 선배가 후배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 '편하게'라는 것의 범위는 완전한 반말부터 반말과 반존대(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말)를 말한다. 나같이 동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나이가 많은 후배에게는 존댓말 비중을 높게 써주지만, 1~2살 많은 후배들에겐 반말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같은 사무관이 아니라 과장과 사무관처럼 직급이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반말을 쓰는 게 당연시된다. 그래도 몇몇 과장님이나 국장님은 끝까지 존댓말을 쓰셨다. 물론 존댓말을 쓰는 것과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어떤 과장님은 극 존칭을 쓰셨지만 업무를 제대로 못하면 가끔 비속어도 섞어가며 큰 소리로 혼을 내시기도 했고, 어떤 과장님은 편하게 반말을 쓰셨지만 친근한 표현과 말투로 말씀하셔서 동네 형같이 편했었다.



또 다른 부처는 전적으로 나이에 따랐다. 내가 파견 갔던 부처였는데, 고참 사무관이 날 처음 보자마자 나이를 물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걸 확인하자마자 ‘그럼 나 편하게 말할게’라면서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보다 2~3년 선배 사무관들도 나에게 편하게 말하다가 (이건 내가 어려 보인다는 뜻도 된다) 나중에 내 나이를 알고서는 오히려 날 형으로 부르면서 자기들에게 말을 놓으라고 했었다. 나는 행정고시 동기들 외에는 주무관이라도 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거부감이 심했다. 처음엔 선배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말을 놓으려고 해도 생각만큼 잘 안됐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 막상 이름을 부르게 되니깐 그게 서로 가까워지게 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부처는 대학 선후배들이 많아서 족보가 꼬이지 않으려고 그런 문화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사무관들끼리도 나이에 따라 말을 편하게 놓는 분위기인데 과장이나 국장은 그 밑에 사람들에게 당연히 편하게 말하는 분위기였다. 나를 부를 때도 당연히 'ㅇㅇ야'라고 하셨고, 불리는 나도 어색하게 느끼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경향성을 띤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반말을 거의 볼 수 없는 부처도 있다. 고시 선후배나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존대하는 편이다. 이런 부처는 조직 분위기가 전체주의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저녁 회식 문화도 별로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사회 전체 분위기가 바뀌는 것인지 MZ세대 공무원들이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부처들도 변화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반말보단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




나는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모두에게 존칭을 쓰는 게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나보고 나이도 많으신데 편하게 말해달라고 하는 행정고시 동기가 있다면 그에게는 편하게 말한다. (먼저 말을 놓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른 부처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고등학교나 대학교 후배들이 나보고 선배인데 말 놓으시라고 하면 말을 편하게 한다. 이건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헷갈려서라는 점이 제일 크다. 원래 말을 놓던 사이인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 만났을 때 기억이 가물거릴 수도 있다. 원래 말을 놓은 사이인가 잘 모르겠어서 존대어를 썼는데 듣는 상대방은 멀어진 것만 같은 기분에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면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되니깐 편한 점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의 이름만 잘 떠올리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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