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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Nov 18. 2022

보고서 요약하기

한때 보고서를 짧게 요약하던 업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부처에서 30장짜리 대책을 발표하면 그걸 1장으로 요약해서 간부들에게 보고하는 업무였죠. 다만,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해 그 부처가 엑기스만 뽑아 30장으로 압축해서 발표한 대책을 다시 1장으로 요약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요약하게 되었을 땐 어떻게 시작할지도 모르겠어서 난감했습니다. 대책 보고서의 목차만 다 따다 써도 1장은 넘길 것 같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한 장 안에 구겨 넣었습니다. 내용이 하나도 빠지지 않게요. 그렇게 과장님께 가져갔더니, 과장님께서는 제 보고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바로 동의했습니다. 과장님, 30장을 1장으로 요약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요. 사실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과장님은 보고서 원문을 가져와보라고 했습니다. 저를 앞에 앉히더니 30장짜리 보고서를 쭉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내용을 하나씩 묻더군요. 저는 당연히 대답을 못했습니다. 저는 보고서 안에 중요하다 싶은 목차들을 따와서 표현을 좀 바꾸는 식으로 요약을 했었거든요. 그 보고서의 내용까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했고요. 그런데 과장님께서는 보고서를 요약하려면 내용을 알아야 한다며 말씀하셨습니다.


"보고서를 요약하는 건 보고서 전체 내용을 1장 안에 적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보고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뽑는 것이야. 뽑는 기준은 그 1장 요약 보고서를 읽을 간부들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겠지. 지금 이 대책을 보면 뭐가 핵심인 것 같냐? 이번 신규 대책들을 보면 단순히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수요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들이잖아. 그게 느껴져? 보고서의 핵심을 찾아내서 그 위주로 적으면 돼. 목차도 꼭 대책과 똑같은 틀로 할 필요도 없고, 나머지 내용은 괜히 적어봐야 무슨 의미인지 설명도 안 될 거면 안 적는 게 더 나아."


요약이란 게 그냥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하는 게 아니라, 원문을 읽을 시간이 없는 간부들을 위해서 핵심을 찾고 그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해도 된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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