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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05. 2022

아내가 승진했다

아내가 승진했다. 아내는 나보다 1년 선배라서 먼저 승진했다. 사실 그게 나보다 먼저 승진한 진짜 이유는 아니다. 아내가 다니는 부처는 내가 다니는 부처보다 승진이 3년은 빠르다. 거기다 내 부처는 인사적체가 점점 더 심해질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최소 4년 이상은 있어야 나도 승진을 노려볼만하다. 부처 간의 승진 격차는 꽤 심하다.


서기관 승진이 가장 빠른 부처를 꼽아보라면 대표적으로 중소벤처기업부와 질병관리청을 들 수 있다. 내 동기는 이미 승진했고, 나보다 후배도 승진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최근에 부와 청으로 승격한 조직인만큼 고시 출신이 많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꽤 승진이 빠른 편인 부처로는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정도가 생각난다.


반대로 승진이 느린 부처로는 대표적으로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가 있다. 꼭 큰 부처만 느린 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법제처도 인사적체가 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부처 안에서는 승진 속도가 중요하진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차피 선배가 먼저 승진하고, 후배보다 내가 먼저 승진하니깐. 그런데 부처 간에 승진 편차는 좀 문제가 된다. 같이 행정고시 붙은 동기인데 누구는 서기관 승진해서 과장까지 달았는데 누구는 여전히 사무관이다. 과장님을 모시고 회의에 갔더니 과장으로 승진한 동기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썰이 아니라 사실인 것이다.


지금보다 인사적체가 심하지 않았다는 간부들도 서로 직급 차이가 꽤 난다. 같은 기수라도 누구는 3급 부이사관인데 누구는 1급 실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모 부처는 과장까지 하고 정년퇴직하는 게 기정사실화 되었다더라. 그런 부처에서 일하는 동기들은 밤늦게 주말까지 나오면서 고생해봐야 널럴한 옆 부처에 비해 승진도 느린데,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한다. 업무 의욕이 떨어지면 결국 누가 피해를 볼까. 부처 간 승진 격차는 빨리 해결이 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정작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윗분들은 이미 승진했으니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승진한 아내는 이전에 비해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상당히 커졌고, 그만큼 바빠졌다. 주말이라고 집에서 늦잠을 자며 쉬고 있는데, 갑자기 당일 오후 2시에 장관님 회의가 잡혔다며 빨리 준비해란 연락을 받아 헐레벌떡 회사에 나간 적도 있었다. 요즘은 매일 야근이고, 새벽에서야 집에 오는 경우도 전보다 늘었다.


승진했으니 월급이 늘었다지만 4급부턴 초과근무 수당을 못 받기 때문에 이전보다 드라마틱하게 월급이 늘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높은 직급에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하는 업무가 중요해진 만큼 느끼는 보람이 커진 것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휴직하고 싶단 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보면 일본 지방 공무원들이 책임은 커지면서 돈은 안 준다며 승진을 기피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내 주변에는 힘들게 시험 봐서 여기까지 왔는데 힘들어도 좋으니 승진 좀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승진은 느려도 그냥 적당한 업무 강도 하에서 정년까지 하고 싶단 사람도 있다. 난 어느 쪽일까. 원래는 전자였는데 점점 후자로 바뀌고 있다. 그러니 아내라도 잘나가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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