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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27. 2022

겁쟁이의 변명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 응모를 왜 안 했냐면요

종종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늦은 나이에 행정고시를 준비할 생각을 했냐고. 인생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원래 위험선호적인 성향이냐고.


사실 나는 완전히 반대다. 질 것 같으면 도망치는 위험회피적인 스타일이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질 것 같은 싸움에서도 도망치지 않은 건 딱 두 가지였다. 행정고시,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사는 아내.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겁이 나서 도망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대학 밴드부에서 베이스를 치고 싶었다. 베이스 살 돈은 없었고, 집에 남는 통기타를 가지고 열심히 연습했었다. 그리고 밴드부 오디션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 앞에 지원자들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저렇게 잘 치는 실력자들이 많은데 어떻게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싶었다. 심지어 난 베이스는 칠 줄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서 도망쳤다. 말 그대로 오디션장에서 나가버렸고, 함께 오디션을 보러 온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베이스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그래서 내가 지원했으면 됐을 거라고 하더라. 많이 후회했다.


최근에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도망쳤다. 그래도 1년간 브런치 활동을 했는데, 내 글이 언젠가 출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래서 여러 군데 출판사에 연락을 해본 적도 있었다. 다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 시기가 되었다. 나는 고민했다. 떨어져도 손해 볼 것도 없으니 응모를 해볼까 했다. 그런데 또 소심한 내 성향이 발동했다. 어차피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응모까지 할 필요가 있나. 괜한 고민을 안 하게, 이미 발간했던 브런치북마저 지우자. 이런 이유로 브런치북을 삭제했다.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소심함이다. 그랬으면서 얼마 전 브런치북 수상작 발표를 보고는 난 지원도 안 했으니 떨어진 것도 아니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12월 초에 행정고시 합격자 발표가 났다. 연수원은 4월부터 시작이었다. 몇 달의 여유가 생겼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건 바로 주변에 베이스 학원을 찾아 수강을 시작한 것이었다. 밴드부는 내 마음속에 항상 남아 있던 응어리였다. 그걸 풀기 위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 베이스를 연습했고, 연수원 밴드부 동아리에 들어가서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했다. 홍대에서 밴드 공연까지 하고 나서야 15년 전 오디션장에서 도망쳤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렸고, 내 감정에 둔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서야 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다시는 도망치지 말자고 했다.


나는 브런치북 출간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자기 위로를 하는 순간 오디션에서 도망갔던 내가 떠올랐다. 40대의 내가 20대에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나이 헛 먹었다. 떨어지더라도 응모했던 편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 하다가 다시 마음을 먹었다. 내년엔 피하긴커녕 오히려 도전하고 싶을 정도의 글을 써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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