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Jan 26. 2023

40대 중반인데 MZ세대 같다니..

원래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웅변학원을 다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두꺼운 얼굴 피부만 믿고 까부는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술자리 같은 데서 여러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더 두려워하는 편입니다. 외향적인 면과 내성적인 면이 공존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MBTI에서도 커트라인에 걸린 E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대범한 성격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좀 커서 보니 저는 사람들이 말하기 껄끄러운 사람 앞에서도 말을 쉽게 잘하는 편이더군요. 어떤 사람이 말하기 껄끄럽냐고요? 대표적으로 직장 상사를 들 수 있겠네요.




20대 후반에 민간 회사를 다닐 때 부장님께도 할 말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즐겨하던 게임을 하기 위해 회사 연차를 쓰겠다고 부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정확히 설명을 드리자면 그날은 시즌 마지막 날이어서 하루종일 팀원들과 눈치싸움 하며 대기해야 하는 중요한 날이라 연차를 쓰는 게 맞지만.. 보통 분들은 공감하시기 어렵겠죠) 그랬더니 마음씨 좋은 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휴가 쓰는 건 좋은데, 사람들에게 휴가 사유는 말하지 마."


이런 성격은 40대가 되더라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좀 더 나이를 먹은 만큼 노련해졌죠.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공무원들이 강제로 재택근무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초기엔 재택근무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눈치를 보고 재택근무 하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과장님께 제가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었고, 재택 중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후로는 제가 자발적으로 재택근무 한다고 말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업무를 하더라도 국장님이나 과장님께 제 생각을 말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면 상사들과 논쟁이 붙기도 하는데, 제가 맞다는 확신이 있으면 끝까지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어쩔 때는 과장님께서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로 과하게 제 의견을 표현할 때도 있었죠. (운 좋게도 저를 잘 받아주시는 과장님을 만나서 아직까진 회사에 나쁜 이미지가 생기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과장님께서 한 번은 저에게 MZ세대 공무원 같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저는 저야말로 나이도 많은 편이고 일하는 것도 좋아해서 MZ세대보다는 꼰대에 가까운 편인 것 같은데 뭐를 보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다고 그랬었거든요. 지금은 좀 이해가 됩니다. 자기 의사를 주변 눈치 안 보고 직설적으로 표시하는 것도 MZ세대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이니깐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그런 성격인 거라, 좀 억울한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엔 우리 과에 중요한 업무 지시가 떨어져서 총괄 서기관님이 보고서 쓰시느라 휴일에도 나오고 새벽에 퇴근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고생하시는 서기관님께 도와드릴 거 없냐고 먼저 물으면서 도와드렸데, 퇴근 시간이 지나니깐 갑자기 집에 너무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서기관님께 집에 가도 되냐고 묻고 바로 퇴근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제 아내는, 그럼 사무관이 집에 가도 되냐고 묻는데 가지 말라고 할 서기관이 어디 있냐며, 저보고 완전 MZ세대 공무원이라면서 놀려대더군요. 따지고 보면 저도 80년대 생이니 MZ세대라고 불려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이전글 공무직에 대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