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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01. 2023

공짜 점심은 없다

지난겨울, 국장님께 지자체 공무원 교육을 위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국장님께서 저보고 유튜브 한번 찍어보는 게 어떠냐 하셨죠. 저는 제가 무슨 유튜브를 찍냐며 손사래를 쳤고, 흐지부지되는가 싶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샤워하면서 내년엔 무슨 새로운 일을 꾸밀까 고민 중에 불현듯 수습 사무관이 우리 과로 배정된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오, 수습 사무관과 함께라면 유튜브를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후배가 묻고 선배가 답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공무원 특성상 영상 촬영은 다들 크게 부담을 느끼는데, 수습은 거절도 하기 어려울 테니 딱 맞았죠. 거기다 젊은 공무원의 감성도 기대가 됐고요. 바로 영상 촬영 및 제작 계획을 작성해서 국장님께 보고 드리고 컨펌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습이 오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수습 사무관이 왔을 때 처음엔 별 말을 안 했습니다. 사무실에 적응도 해야 하는데 괜한 부담을 주긴 그랬습니다. 한 일주일쯤 지났나, 함께 경기도로 출장 갈 일이 있었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전 이때다 싶었죠. 한우 전문점으로 가서 소고기 한 접시를 시켰습니다. 선배님은 원래 이렇게 점심에 고기도 구워 드시냐 하며 놀라는데, 전 자주 그런다며 부담 없이 드시라고 그랬죠.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 사무관은 사진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더라고요.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말했습니다. 우리 유튜브도 찍어야 한다고. 국장님께 이미 보고 드렸기 때문에 안 찍을 수 없으며, 1년 동안 100편은 찍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무관님도 배우셨을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그리고 두 달. 우여곡절 끝에 영상 두 편을 찍었습니다. 수습 사무관님은 이제 대본도 쓰고 영상 자막도 답니다. 행시 합격하고 와서 이런 일도 하는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괜히 저 같은 선배를 만나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평 하나 없는 것 보면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오히려 화면을 보니 둘이 안 친해 보이는 것 같다며 먼저 저녁에 술 사달라고 하더군요. 술도 공짜가 아닐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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