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Feb 11. 2023

국장님, 다시 찍을게요

국장님 방에 다녀왔던 수습 사무관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보고가 잘 안 됐나 봅니다. 뭐가 문제였냐고 물어봤더니 국장님께서 유튜브 영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다네요. 영상의 호불호야 개인 취향 문제니 그럴 수 있다 싶었죠. 그런데 수습 이야기를 더 듣다 보니 그냥 넘어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국장님께서 영상이 재미도 감동도 없다며 크게 실망하신 것 같다더라고요. 아.. 이건 제가 직접 국장님께 찾아가서 수습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수습 사무관과 함께 바로 국장실로 달려갔습니다. 국장님께서 영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왔는데, 지금 당장은 부족한 면이 많아도 점점 발전하는 게 기획 의도였다고 말씀드렸지만, 국장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나가는 거면 최선을 다해 잘 찍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저는 우리가 예산도 전문인력도 없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영상이라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딱 5편만 찍을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국장님도 간곡히 부탁하는 저를 보며 마지못해 오케이 하셨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고민했습니다. 국장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처 이름을 걸고 내는 영상인데 최선의 노력을 했어야 했죠. 저도 영상 촬영을 쉽게 생각했던 점을 반성했습니다. 대본도 수습 사무관에게 초안을 쓰게 했다거나, 대변인실에서 영상 편집하는 것도 힘들 거라 생각해서 최소한의 피드백을 줬었던 그런 행동들이 아쉬웠습니다. 


이미 찍어서 올라간 영상은 어쩔 수 없었지만, 두 번째 영상은 촬영은 끝내고 편집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국장님께 그런 피드백을 받았는데도 두 번째 영상을 내보내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욕먹더라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유튜브 팀원(우리끼리 팀원이라고 부릅니다)들에게 말했습니다. 영상 다시 찍자고. 그간 편집한 건 아깝지만 제가 새로 대본 쓸 테니 다시 촬영하자고 했습니다. 다행히 팀원들이 흔쾌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더라고요. 다시 찍으면 어떻고 좀 늦게 업로드하면 어떻냐고, 잘 찍는 게 중요하지라는데 고마웠습니다.


누가 강제로 해라고 떠민 일도 아닌데 제가 괜히 시작했다가 망하는 것 아닌가 살짝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런 착잡한 기분으로 일하는 와중에 온-나라 메신저로 쪽지가 하나 오더군요. 한 지자체 공무원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유튜브 뜬 것 잘 봤다며,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그런데 영상에서 소개한 책자 남는 거 있음 보내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망한 영상 같아서 아직 홍보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걸 봐주시고 직접 연락까지 주시다니. 감동받았습니다. 그래, 재미있으려고 찍는 영상이 아니야, 지자체 공무원들이 보고 도움이 되려고 영상을 찍는 것이지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재미와 감동까진 못주더라도 정보 전달만이라도 잘하자라는 마음으로 대본을 쓰고, 즐겁게 다시 촬영해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공짜 점심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