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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r 01. 2023

점심에 구내식당을 가게 된 이유

요즘은 점심에 혼자 구내식당에 자주 갑니다. 전에는 혼자 먹는 모습이 처량해 보일까 봐 어떻게든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 마음을 모르고 누구는 저보고 핵인싸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은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어쨌든 혼자 먹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되었네요. 이렇게 혼자 먹는 것을 즐기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최근에 제가 공부모임을 주최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우리 과 사무관, 주무관들에게 자치법규에 대해 강의를 하는 건데요. 누가 시킨 건 아니고, 제가 고민하고 깨달은 지식을 과원들과 나누려는 의도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참석이 강제된 건 아니지만(수습 사무관은 필참), 보통 5~6명 정도가 오시더라고요. 문제는 일주일에 세 번 1시 반부터 30분 정도 하는데, 강의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 보니 당일 점심에 구내식당에서 대충 먹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점심 약속 잡는 걸 피하고 있습니다. 누가 들으면 절 정말 워커홀릭으로 볼만한 이야기네요.



두 번째는 점심 자리가 좀 부담스러워진 부분이 있어서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게 되면 보통 상사나 선배 아니면 후배들이랑 먹는데 솔직히 저는 두 그룹 다 마냥 편하진 않거든요. 먼저 상사나 선배들과 점심을 먹게 된다면 제가 동선과 메뉴를 고려해서 식당도 예약해야 하고, 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적절한 타이밍에 저도 한마디 거들어야 할 때도 있는데 특히 잘 모르는 상사나 선배들에게 괜히 말실수하는 게 아닐까 싶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기껏 맛있고 비싼 밥을 먹게 되었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후배들이랑 먹게 되면 주로 제가 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식사 자리 자체는 편합니다. 물론 후배들에게 알아서 식당 예약을 시키면 권위적인 선배가 될 수 있으니 가급적 제가 식당을 찾아 예약까지 합니다. 이러고 보니 누구랑 먹든 제가 예약하네요... 문제는 제가 모은 자리이니 만큼 제가 이야기를 주도해야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연애나 취미 같은 주제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묻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고, 회사나 업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무 꼰대같이 보일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면 소화가 안 될 것 같아서 더 그렇게 못하겠고요. 그렇다고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밥만 먹을 거라면 그냥 혼자 먹는 게 훨씬 편하죠.



어떤 과장님은 점심 전에 항상 그날 뉴스를 검색하셔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준비를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회사에 있는 시간 중 가장 힐링되고 좋아야 할 점심시간도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 있나 봅니다. 그나마 코로나19의 여파로 구내식당 자리엔 여전히 칸막이가 쳐져 있고 혼자 와서 드시는 분도 많다 보니, 구내식당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도피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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