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공무원 준비를 해서 그런지 합격에 참 목이 말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공무원 생활에 만족해하고, 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 제가 행정고시를 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학생 때 공부는 잘한 편이었으나, 고시 합격에 꼭 필요한 가치인 노력, 꾸준함, 성실함 이런 것들은 그때까지의 제 모습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거든요.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수업 듣는 게 그렇게 재미가 없어서 수업시간에 잠도 많이 자고 땡땡이도 치고 그랬습니다. 이걸 아는 친구들은 걱정할만했었죠. 하지만 저는 고시 공부하는 동안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학원을 다니는 내내 수업 한 번 빠지지도 않았죠. 이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은 어떻게 제가 그럴 수 있었을까 궁금해했었습니다. 사실 그런 성실함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학원을 등록하면서, '내가 만약 한 번이라도 수업에 빠진다면 합격할 자격이 없는 거다, 그러니깐 절대 수업에 빠지지 말자'라고 다짐을 했거든요. 제가 또 융통성이 없어서 이런 약속을 한번 하면 지키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몇 년을 고시 생활을 하면서 수업에 빠지고 싶었던 유혹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다짐을 되뇌면서 극복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제약을 건 덕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힘든 일이 보이면 합격을 걸고 도전했었습니다. 마치 내기 중독자처럼 말이죠. '매일 모의고사 6과목을 못 풀면 난 합격할 자격이 없는 거야'라고 하면서 하루에 9시간 내내 모의고사만 푸는 것과 같이, 합격을 걸고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면서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했었습니다. 난 이걸 해냈으니 합격할 자격이 있는 거다라면서요. 그만큼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도전했던 것 중엔 특히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수영을 꾸준히 다녔는데요. 평소 10바퀴도 못 도는 사람인 제가 어느 날 뭐에 꽂혔는지 그날은 수영장 20바퀴를 돌겠다는 도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20바퀴를 돌 거야, 근데 만약 이걸 못 돈다면 난 시험에 불합격할 거야."
정말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왜 내가 사서 고생인 건지 하면서 말이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아무 문제도 없는 거였지만, 나중에 불합격하게 된다면 오늘이 너무 기억날 것 같아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죽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꿋꿋이 돌다 보니 어떻게 20바퀴를 다 채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견디다 보면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내기 벅찬 내기는 가급적 자제해야겠다는 절제력도 배웠고요)
합격을 위해서 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 만화 원작의 드라마 "중쇄를 찍자"에서는 운을 모으기 위해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렇게 모은 운을 귀중한 곳에 사용하죠.
예전의 저는 친구가 길 가던 노인의 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고 괜히 오버하지 말라고 핀잔을 줄 정도로 선행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시생이 되고선 시험에 합격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신림역 사거리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분을 뒤에서 밀며 도움을 준 적도 있고, 폐지 줍는 분들에게 제가 갖고 있는 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공무원 면접을 대비해서이긴 했지만 헌혈이나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었습니다. 그렇게 합격을 위해 열심히 운을 모았죠.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합격할 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약한 부분에서 시험 문제가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제가 합격을 한 점만 봐도 그렇습니다. 당시 저랑 함께 공부했던 스터디원은 누가 봐도 저보다 실력이 뛰어난 게 확실했지만, 그 해에 저 혼자만 시험에 붙었죠. (그 친구는 2년 후에 수석으로 합격합니다)
행정고시라는 게 실력은 기본이고, 운도 받쳐줘야 합격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제가 비록 합격은 했지만, 고시생 시절 겨우 몇 년간 선행을 통해 쌓은 운만으로 합격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미래의 운, 즉 공무원으로 올바른 일을 해서 쌓게 될 운까지 끌어 썼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빚진 운을 갚기 위해서라도 대충대충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 분임 동기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