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판검사나 변호사, 외교관에 대해서는 알지만 사무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사무관이 5급 공무원이고 이런 정보는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하면 알 수 있지만, 실제 사무관이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사무관이란 직업은 주로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쓰는 업무가 많아 다른 직업에 비해 임팩트도 없고, 실제 하는 업무가 대부분 대외비인 경우여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사무관이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한번 현직 사무관의 일상이란 글을 적어보면 어떨까 싶어 브런치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있죠.
저는 처음부터 공무원이 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주위 친구들처럼 공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를 마쳤고, 병역특례로 어느 중소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3년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그제야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30대가 되어서야 말이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는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지,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것인지,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이 좋은지 이런 것들을 고민한 것입니다.
4월에 퇴사를 했는데 행정고시 시험을 보겠다며 인터넷 학원 강의를 등록한 게 5월 말이니 내 직업을 찾겠다고 한 달 이상을 고민하며 보냈습니다. 그때는 미래가 보이지 않고 깜깜했지만,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난 남을 도우면서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은 저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습니다.
거기다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사법고시도 후보에 있었는데 막상 몇 년 만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30대 중반에 변호사로 취업을 고민해야 하는 게 부담이 되더군요. 반면 행정고시는 합격만 하면 바로 공무원이 된다는 점도 저에겐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저는 주변의 권고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지원을 해봤지만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한 후에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었죠.
행정고시에 관해 조언을 구했던 고등학교 동기가 있었습니다. 진작 시험에 합격해서 일을 하고 있던 친구였죠. 과천까지 찾아가 설명을 들었습니다. 친구는 자기처럼 일찍 공직에 들어오면 정년이 되기 전에 퇴직해야 하지만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정년까지 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 내가 통계학은 학교 때 들은 적 있다니깐 그럼 ‘재경’ 직렬을 선택하면 되겠다고 말한 것 정도가 기억납니다.
재경직렬에 합격하면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주로 경제와 관련된 부처에 발령받습니다. 저는 합격하면 어떤 부처에 가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 친구의 말만 듣고 재경직렬을 선택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제가 보기에 그때 저는 참 미숙했죠. 그 중요한 직렬을 10년 전 대학교에서 통계학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선택했다는 걸 보면 말입니다. 나중에 재경직렬은 1차 PSAT 커트라인이 가장 높으며 합격하기 어려운 직렬이란 걸 알았고, 그땐 직렬을 바꾸기엔 늦었습니다. 그리곤 힘들게 합격해 놓고 지금은 경제와 관련 없는 부처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세상 일은 계획한 것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한 가지 또 실수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들 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은 수험기간이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친구들의 능력이 출중해서 그런 줄은 모르고 저도 금방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인 줄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착각하지 않았더라면 늦은 나이에 쉽게 이 시험에 도전하진 못했겠지만요. 결과적으로 만 4년 만에 합격하긴 했지만, 시험에 불합격한 횟수가 늘 수록 자신감도 점점 떨어졌습니다. 이러다 아예 못 붙는 것 아니냐며 매일 밤마다 기도했죠. '합격하면 정말 국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살겠다'라고. 합격했을 당시에 활동했던 행정고시 커뮤니티에 적었던 글에서 저의 절실함과 감사함이 많이 묻어 나옵니다. 이것은 글 맨 뒤에 첨부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행정고시를 보게 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한 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했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친구들을 보니 저도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합격만 하면 취업이 되는 점도 있었고, 가족과 친구들도 제가 다른 일 보다 공무원이 잘 어울린다고 추천하기도 했고. 이유는 참 많았습니다. 문제는 공무원이 된 후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런 이유들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언젠가부터는 제가 타성에 젖어 일을 하게 되고, 어떨 땐 공무원을 왜 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제가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이런 이유들을 잊지 않으려고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아쉽게 된 친구들은 내년에 분명 좋은 성적으로 붙을 것이고, 합격한 친구들은 축하한다.
어제 내가 들었던 느낌을 간단히 적어보고 싶어서 글 쓴다.
몇 달 전 2차 시험 발표 직전에는 추가합격이라도 좋으니 제발 붙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어.
그런데 막상 붙고 나니깐 추가합격은 아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고,
면접 당일에 추가합격이 아니란 걸 아는 순간 성적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면 만족한다 했다가,
그리고 어제 합격을 알게 된 후에는 성적이 좋길 바랬었지.
그런데 성적이 생각보다 좋은 편이 아닌 걸 알고 나선 마냥 기쁘진 않았던 것이 사실이야.
참 인간이란 간사한 동물이란 게 맞는 말인 거 같아.
그 후에 가족, 친척, 친구들과 전화하면서 합격해서 기쁘지만 성적이 좋질 않아 아쉽다고 얘기하니깐
다들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넌 붙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얘기를 해주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 하더라.
생각해보면 다들 내가 합격할 것이라 예상 못한 것 같아. 행시 시작할 때 주위에서 다들 말렸거든.
난 놀기 좋아하고 진지하지 못해 항상 편한 것만 찾는, 즉 인생을 대충 살아왔었고,
거기다 공부에 손 놓은 지 오래되었으니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못 미더웠겠지.
여하튼 그래, 난 지금 행시에서 주역이 아니야.
행시를 생각하며 자라왔던 것도 아니고, IT 쪽에서 일하다 말고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지금 한창 똑똑한 친구들과 경쟁해 온 건데,
여기서 합격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일이 잘 풀리니깐 분수에 맞지 않은 큰 꿈을 꿨던 것 같아.
성적 때문에 아쉬워 한 사실 때문에 오히려 같이 공부해왔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더라.
지금부터는 진짜 합격만으로도 감사하며, 어떤 부처에 가더라도 내가 직장 그만둘 때 생각했던 초심을 지키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지금 공부하는 친구들은 꼭 합격 후에 좋은 부처 갈 수 있도록 2차 공부 열심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