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은 무슨 일을 하냐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답하자면 "사무관은 결정한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무관으로서 일을 하다 보면 직장 상사들에게 내 생각은 어떤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잘 모르겠다는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항상 자신의 의견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즉,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정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언가 결정한다는 건 어려운 게 아닙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해온 일이거든요. 공부를 할까 놀까, 놀더라도 무슨 게임을 하며 놀까,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더라도 4드론을 할까 멀티부터 할까. 그렇게 의사를 결정한 것에 대한 결과는 대부분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부를 안 하고 노는 바람에 시험을 망치거나 4드론을 하다가 게임에서 지는 것은 나만 손해 보고 끝날 일입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결정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에 반해 내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때부턴 책임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나 혼자 먹는 점심의 메뉴를 고를 때보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점심의 메뉴를 고를 때 더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과 같죠. 심지어 혼자 배달시킬 땐 메뉴를 잘 고르면서, 남들 앞에선 괜히 결정장애 인척 하기도 합니다. 거기다 함께 먹는 사람과 친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개팅을 한다거나 직장 상사와 밥을 먹을 때 같이요.
그렇다면 저의 결정으로 몇백억짜리 사업 방식이 바뀐다거나, 제가 법령을 이렇게 개정하는 바람에 그동안 지원받고 있던 수천, 수만 명이 지원에서 제외된다면 어떨까요? 제 생각엔 이 결정이 맞는 것 같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게 된다면 전 분명히 그 결정을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아무런 결정 없이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을지도 모르죠. 그래야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못 느끼고, 일이 잘못 풀릴 경우에 들게 될 죄책감도 없을 테니깐요.
사무관 1~2년 차 땐 제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도 과장님이나 선배 사무관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3년 차가 지나니깐 확실히 혼자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언동 하나하나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화 상으로 들었을 땐 분명 딱한 사정이라 생각되어도, 이 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 맞을 것인지, 그로 인해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진 않을까,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너무 불합리해 보이는 것 같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연차와 경험이 쌓이니깐 과거에 했던 고민과 결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엔 이렇게 하면 별 문제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던 것이죠. 하지만 또다시 새로운 문제가 내 앞에 나타났고, 전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은 점은 그 결정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주변에 의견을 묻고 이런 과정들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란 걸 알아채는 눈도 좋아져서, 그럴 땐 시간 끌면서 삽질하는 경우 없이 바로 과장님께 상의를 드렸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통해 똑같은 문제라도 예전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지만 놓친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가벼운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후배 사무관이 국회 대기를 하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자기가 사무실에서 국회 대기를 해야 할지 집에 가서 유선으로 대기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며 이걸 과장님께 물어봐도 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무관이라면 지금 열린 국회와 자기 업무와의 연관성, 최근 국회 요구자료 제출 여부, 현재 쟁점, 지금까지 진행된 국회의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본인이 남아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대신 집에서 유선으로 대기하는 것으로 결정했을 땐, 집에 있다가 바로 대응을 못해서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싶으면 남는 게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남아 있으면 최소한 중간은 가니깐요.
그러면서 과장님께 물어보는 선택은 안 좋다고 말했습니다. 과장님께 물어보더라도 대답은 3가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대기하라고 하셨다면 차라리 안 물어보고 대기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고, 대기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게 과장님의 진심인지 아닌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될 것이고, 만약 과장님께서 사무관이 알아서 해라고 하셨다면 안전하게 대기하는 게 더 낫겠죠.
결국 과장님께 묻는다는 것은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듣고 싶어서일 테지만 정작 그 대답을 듣더라도 진짜 퇴근해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설 것인데, 그렇다면 그냥 과장님께 묻지 않고 솔선해서 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저의 말이 정답인진 모르겠지만, 보통 전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봐서 가장 피해가 적은 선택지를 고르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공무원이다 보니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상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이 대부분 옳았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어쨌든, 매일 난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