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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Oct 16. 2023

부하직원을 망신주는 상사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혼을 낼 수 있습니다. 업무 방식이나 태도 등을 지적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앙부처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 번 당했거든요. 그런 경험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저는 최소한 남들 앞에선 부하직원을 나쁘게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누구든 제가 느낀 그 기분을 또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함께 일하던 연구원의 박사님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장님께서 회의를 주재하셨고, 저도 함께 참여했었죠. 어떤 사안에 대해 박사님들과 제가 한참 의견을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과장님께서 우리의 대화를 멈추게 하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무관이 아직 내용 파악이 잘 안 됐나 봅니다. 우리 부처는 이 사무관과 한 말과 다른 입장입니다."


저는 황당했습니다. 회의를 하기 전에 이미 과장님과 저는 하나의 입장으로 정리했었습니다. 저희는 개인이 아니라 부처를 대표해서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와 과장님이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의 중에 우리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과장님이 마치 제 의견은 부처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고 치부해 버리셨던 것이었죠. 혹시라도 제가 잘못된 의견을 말했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불러다 주의를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졸지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홧김에 "과장님, 우리 의견을 미리 이렇게 정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하면 박사님들이 보기에 콩가루 집안처럼 보일까 봐 꾹 참았습니다. 그냥 제가 잘못 알았고, 잘못 말했던 것으로 정리되는 게 좋겠다 싶었죠. 다만, 앞으로 계속 저 박사님들과 계속 일하게 될 텐데, 저의 발언권이 매우 약해지게 될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말한 것도 언제든 과장님이 뒤집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니깐요.


어쨌든, 사람들 앞에서 무시(배신)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한 번은 예전 부처에서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과장님은 저에게 우리 부처가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보고 기획 보고서는 잘 작성하는 편인데, 국회나 언론을 대응하면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처는 아무래도 정치적인 판단을 많이 해야 하는 곳인데, 저 같은 사람은 나중에 높은 자리로 가면 큰 실수나 잘못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하셨죠. 과장님은 저보고 다른 부처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하셨습니다.


과장님의 말씀에 일리는 있었습니다. 제가 정치적인 감각이 약하다 보니 그렇게 여기실 수 있었죠. 그리고 이런 말씀을 단 둘이 있을 때 해주신 건 감사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과 회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과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 과장님이 그러셨습니다.


"내 생각에 자네 성향은 우리 부처와 잘 안 맞는 것 같아. 언젠가 크게 사고 한번 칠 것 같은데, 차라리 다른 부처로 옮기는 게 어떨까. 난 한번 이야기 한 적 있거든. 내가 부담되면 회식 자리에서 빠져줄 테니 지금 과원들에게 한번 상담받아봐요."


저는 당황했습니다. 제가 우리 부처에 안 맞다는 것은 과장님의 개인적인 생각인 건데, 이걸 공론화시켜 버리고 졸지에 저를 조직 부적응자로 만들어버렸으니깐요.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제가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고, 난 내 할 일 잘하고 있으니 상담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할 상황은 아니었고, 어색하게 웃으며 과원들의 조언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과장님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박혔고, 나중에 제가 부처를 옮기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부처로 옮긴 후에 업무 만족도가 더 높아지고 인정도 더 받고 있는 점을 보면, 그 과장님 말씀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을 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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