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선 전화보다 메신저를 선호합니다. 젊은 세대에 번지고 있다는 콜포비아(Call phobia)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다면 뭐 때문인지 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1
간단한 내용은 채팅이 말보다 더 정확히 전달됩니다. 저는 전화로는 상대방 목소리가 잘 안 들리더라고요. 제 귀가 문제인가 싶어 이비인후과에서 귀를 파본 적도 있었는데요, 그래도 여전했습니다. 상대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주변의 소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무실 전화가 낡아서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전화로는 상대방이 말한 걸 여러 번 되물었던 적이 많은데, 그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전화로 통화하면 동시에 메모도 해야 하죠. 끊고 나서 까먹을 수도 있으니깐요. 그러다 보면 대화에 집중이 안 되는 점도 있습니다. 반면, 채팅은 대화 기록이 남아 있으니깐 필요하면 대화 내용을 다시 읽으면 되죠. 중요한 대화인 경우엔 채팅 기록을 보면서 제 다이어리에 정리를 해두기도 합니다.
사안이 복잡해서 채팅으로는 한계가 있는 경우엔 전화보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걸 더 선호합니다. 자료를 함께 봐야 할 수도 있고,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 등을 봐야 서로 대화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거든요. 다만, 부처가 달라 직접 만나기 힘든 경우엔 차선책으로 전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
#2
전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깜짝 놀랍니다. 전화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그게 참 싫습니다. 그래서 제 핸드폰은 99%의 경우 진동으로 해놓고 다니며, 카카오톡은 아예 무음으로 합니다. 그러면 전화를 아예 못 받는 거 아닌가 싶지만, 스마트와치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무실 전화는 진동으로 해둘 수 없으니 벨소리를 작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꾸 전화가 와도 못 듣고 못 받게 되더라고요. 결국 벨소리를 좀 키워놨는데, 지금 비서관 자리에서 저에게 오는 전화는 대부분 급히 받아야 하는 것들이다 보니 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순간 깜짝 놀라며 후다닥 전화를 받습니다. 이 과정이 저에겐 엄청난 부담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제가 상대에게 전화하더라도 상대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지금 제가 비서관 업무를 하다 보니 더욱 그렇겠지요. 제 사무실 번호로 오는 전화는 제가 모시는 분이 찾는다거나 아니면 무슨 심각한 문제가 터진 건가 싶어 다들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장 통화 연결이 되어야 할 정도로 급한 건이 아니라면 가급적 메신저로 용건을 남깁니다.
메신저로 용건을 남기면 좋은 점은, 상대가 원할 때 확인하고 원할 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심리적, 시간적 여유를 주면 훨씬 더 좋은 대답을 들을 수도 있고요. 괜히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수시로 전화를 걸다 보면, 양질의 대답을 못 들으면서 상대에게 부담만 주는 꼴이 되어버릴 수도 있죠.
#3
업무와 관련돼서 서로 말을 나누다 보면, 대화가 겉돌거나 붕 뜨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를 글로 나누다 보면 그 대화가 선명해집니다. 복잡한 것도 글로 풀어쓰다 보면 저절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거기다 지금 자리에선 한 번에 수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대화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여러 안건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그 안건 담당자들에게 차례로 전화하기보단 메신저로 용건을 남겨 놓고 필요할 때 답변을 확인하는 게 업무에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한창 어떤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중 전화가 와서 맥이 끊기는 경우도 많은데, 메신저는 그렇지 않죠.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가 원할 때 대답하면 되니깐요.
#결론
결론은 채팅이 생각보다 업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윗사람들이 제가 컴퓨터로 키보드를 다다다닥 치고 있는 걸 보면 "쟤 채팅하면서 놀고 있나"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실제로 잡담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업무를 하고 있답니다. 여기다 이렇게 말한다고 그분들이 알아주시는 건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해명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