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Mar 03. 2024

짝꿍 비서관 이야기

우리 비서실은 비서관이 두 명이다. 보통 다른 부처 차관급의 비서관은 사무관 한 명인데 비해 우리 부처는 두 명인 게 특징이다. 과거에는 한 명이었다는데, 비서관 혼자 하기에 업무가 너무 많아서 두 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비서관이 일정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법령 안건도 검토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부처에서 가장 바쁜 자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비서관 두 명은 하루종일 창문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지낸다. 거기다 평일에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출근을 하는 경우가 잦아서 비서관들끼리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 그만큼 자기와 마음이 잘 맞는 짝꿍(?) 비서관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비서관을 뽑는 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전적으로 운에 맡겨야 한다.


평소에 잘 지내는 선후배나 동기라 하더라도 한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사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예를 들면, 내가 대학교 때 정말 친한 친구와 기숙사 방을 신청해서 살았는데, 희한하게도 걔 얼굴만 봐도 미운 감정이 들어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었다. 나중에 따로 살게 되면서 다시 좋은 관계로 회복했지만, 나랑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다. 짝꿍 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서 난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된다. 예전 비서관도 그렇지만, 지금 함께 있는 짝꿍 비서관이랑 매우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짝꿍 비서관은 나보다 3개월 늦게 비서실에 왔지만, 공무원으로는 몇 년 선배이다. 그 선배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비서실에 올 때만 해도 나와 아는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엔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선배는 먼저 비서실에 온 나에게 많이 알려달라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 후로도 나를 후배보다는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고, 나도 선배에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하게 했지만 선배는 다 잘 받아줬다. 서로 농담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안 그래도 업무량도 많고 하루종일 바짝 긴장한 채로 있어야 하는데, 비서실에 있는 사람들끼리라도 편하게 속에 있는 말을 나누며 지내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 덕에 격무로 힘든 나날도 버틸 수 있었다. 앞으로도 지금 짝꿍 비서관이 그대로 쭉 갔으면 좋겠지만, 인사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있던 사람이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사무실 분위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사회생활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어렵고 바쁜 업무보다도 누구 밑에서,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훨씬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비서관 자리에서 나올 땐 그동안 노고(?)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다음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이 소중한 기회를 사용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일하는 지를 더 고려할 생각이다. 사람이 중요하니깐.

작가의 이전글 고맙다는 말은 공무원도 춤추게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