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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Jan 21. 2022

사무관의 승진에 대한 단상

최근에 행정고시 동기들과는 승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희 동기가 이미 서기관으로 승진한 부처도 있으며, 지금부터 최소 5년은 더 있어야 승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처도 있습니다. 7급이나 9급으로 시작한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같이 시험에 합격해서 함께 일을 시작했는데 회의장에서 저는 사무관이고 동기 친구는 과장으로 만나는 상대적 박탈감은 안 느끼고 싶긴 합니다.


부처 간의 승진 격차가 큰 것뿐만 아니라, 행정고시 선배들에 비해 승진이 점점 느려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고시로 공직에 입직하면 최소 국장까지 단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과장으로 정년퇴직하는 일이 점점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흔해질 것입니다. (물론 과장 퇴직도 배부른 소리일 수 있죠)


그러면 공직 인생에서 두 번 승진하고 퇴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5급 사무관'에서 '4급 무보직 서기관'(서기관이지만 과장 보직을 받기 전까지 사무관처럼 일하는 서기관)으로, '무보직 서기관'에서 '과장'으로.


저는 몇 년 전에 승진이 빠른 부처에서 일하다가 승진이 느린 부처로 옮겼습니다. 그때 그 과에 계신 서기관님이 저보고 거기 몇 년만 더 참고 있으면 승진할 텐데 왜 옮겼냐며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동기들이 승진할 땐 후회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땐 그 말씀이 와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떤 의미인지 알겠네요.




저는 30대 중반에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공무원을 시작했습니다. 장·차관이나 1급 실장처럼 엄청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기엔 나이의 한계가 있습니다. 승진에 대한 열망이 남들보다 덜 하죠. 또, 민간에서 일을 하다 왔기 때문에 일에 대한 만족도가 저에겐 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일이 안 맞아도 승진이 빠른 것보다는 승진이 좀 느려도 일이 저에게 잘 맞는 부처에서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부처를 옮긴 선택을 지금까지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예전 부처는 사업을 주로 하다 보니 외부 활동이 많았습니다. 국회에 설명부터 시작해서 현장 점검, 정책 간담회, 전문가 회의와 같은 외부 활동요. 저는 자리에 앉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연구하는 게 잘 맞는데 사업 부처는 그런 자리가 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사람들 간의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많이 없고요. 조직 문화가 차분하고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승진은 어떻게 될는지 뭐 잘 모르겠고, 일단 지금 행복하니깐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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