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의외로 사주에 관심 많은 공무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있던 과에서는 10년 정도 사주를 꾸준히 봐주셨던 사무관님도 계셨습니다. 저는 사주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때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었고 일도 너무 많아 사는 게 힘들었던 시기여서 좀 봐달라고 그랬습니다.
사무관님께서는 자기는 돈 받고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싫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참을 수 있겠냐며 밑밥을 까시더라고요. 저는 사주를 믿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 사주를 보시고는 여러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나는 건 저렇습니다.
1) 사주는 평범하게 5행이 다 있는 게 좋은데, 저는 5행 중 불이 없다. 그래서 결혼을 못 할 수도 있다.
2) 일이 많겠지만, 사주에 금(?)이 있어 잘 버틸 것이다.
3) 물이 많은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
4) 말하는 게 잘 맞아서 교육 쪽으로 가야겠다.
다른 것들은 다 그러려니 했는데 1)은 좀 불만족스럽더라고요. 사주가 틀렸다고 생각해도 됐지만, 더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 생년월일은 확실하니깐 태어난 시간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제가 태어난 병원 산부인과를 찾아 전화를 해봤습니다.
다행히 30년이 넘게 지난 제 기록이 있었습니다. 신기하더라고요. 그런데 태어난 시각이 제가 아는 것과 달랐습니다. 저는 아침으로 알고 있었는데 점심때라더군요. 당장 부모님께 연락해서 물어봤더니 부모님도 점심때였다라네요. 이건 마치 제 혈액형을 A형으로 알고 있다가 갑자기 B형이라는 소리와 같았습니다.
어쨌든 다시 달라진 시간을 들고 그 사무관님을 찾아갔습니다. 사무관님께서 시간 때문에 사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간곡히 부탁드려서 다시 보셨습니다. 사무관님께서 그 시간에 불이 들어와서 5행을 다 갖추게 되었다고, 저번에 했던 해석이 다 달라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결혼도 할 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주를 믿진 않더라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 사주에서라도 좋은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좀 안정되더라고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살다 보니 결혼도 하고, 금강 옆 아파트에 이사 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