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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Jan 22. 2022

사주를 보시는 사무관님

주변에 의외로 사주에 관심 많은 공무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있던 과에서는 10 정도 사주를 꾸준히 봐주셨던 사무관님도 계셨습니다. 저는 사주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때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었고 일도 너무 많아 사는  힘들었던 시기여서  봐달라고 그랬습니다.


사무관님께서는 자기는 돈 받고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싫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참을 수 있겠냐며 밑밥을 까시더라고요. 저는 사주를 믿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 사주를 보시고는 여러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나는 건 저렇습니다.


1) 사주는 평범하게 5행이 다 있는 게 좋은데, 저는 5행 중 불이 없다. 그래서 결혼을 못 할 수도 있다.

2) 일이 많겠지만, 사주에 금(?)이 있어 잘 버틸 것이다.

3) 물이 많은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

4) 말하는 게 잘 맞아서 교육 쪽으로 가야겠다.


다른 것들은  그러려니 했는데 1)  불만족스럽더라고요. 사주가 틀렸다고 생각해도 됐지만,  근본적인 의문을 가졌습니다.  생년월일은 확실하니깐 태어난 시간이 잘못된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제가 태어난 병원 산부인과를 찾아 전화를 해봤습니다.


다행히 30년이 넘게 지난 제 기록이 있었습니다. 신기하더라고요. 그런데 태어난 시각이 제가 아는 것과 달랐습니다. 저는 아침으로 알고 있었는데 점심때라더군요. 당장 부모님께 연락해서 물어봤더니 부모님도 점심때였다라네요. 이건 마치  혈액형을 A형으로 알고 있다가 갑자기 B형이라는 소리와 같았습니다.


어쨌든 다시 달라진 시간을 들고 그 사무관님을 찾아갔습니다. 사무관님께서 시간 때문에 사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간곡히 부탁드려서 다시 보셨습니다. 사무관님께서 그 시간에 불이 들어와서 5행을 다 갖추게 되었다고, 저번에 했던 해석이 다 달라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결혼도 할 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주를 믿진 않더라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 사주에서라도 좋은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좀 안정되더라고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살다 보니 결혼도 하고, 금강 옆 아파트에 이사 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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