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공부할 때였습니다.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분들은 겪으셨을 것입니다.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진 일을요. 저도 겪었습니다. 원래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서 머리가 빠지는 걱정을 평생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눈에 보일만큼 머리가 빠졌습니다.
한참 공부하는 중에 책 위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보면 엄청 신경이 쓰였습니다. 나중에는 공부하다 말고 거울 두 개를 가지고 제 뒤통수나 정수리를 비춰보곤 했습니다. 이러니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죠. 결국 바리캉을 샀습니다. 집에 혼자서 머리를 삭발하고 나서야 일단 마음이 놓였습니다. 머리가 빠지는 게 보기 싫어서 그냥 머리를 밀어버린 것이죠.
여름에 2차 시험을 치고 나서는 다시 머리를 길렀습니다. 혹시 합격하게 되면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때 삭발한 채로 면접을 볼 수는 없었으니깐요. 점점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보니 다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제 기억으로는 예전 모발이 더 풍성했었거든요.
참다못해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제가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30대 중반이라고 답을 했더니 저에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저의 모발은 제 또래 중에는 보통 수준이라고, 원래 나이가 들면 머리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게 정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은 자기는 정말 심각한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니 저보고 당장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병원을 쫓겨나듯 나가면서도 속으로는 의사 선생님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정색하며 저에게 말씀하시니깐 제가 심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인가 봅니다. 저는 고시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예민했나 보다 하면서 자신 있게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 덕에 꽤 긴 기간 동안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