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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Jan 08. 2022

어떻게 행시를 붙었냐?

어느 날 과장님께서 제가 쓴 보고서를 보시더니 물으셨습니다.


"니가 쓴 보고서를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행시를 붙었냐?"


순간  받더라고요. 그래서 보고서는 한정된 페이지 안에 개조식으로 쓰니깐 당연히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냐, 행시는 서술형으로 쓰기 때문에 합격하기에 전혀 문제없었다고 쏘아붙였습니다. 평소에 과장님은 평소에 보고서가 얼마나 효율적인 보고 방법인지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고, 저는 보고서 적는 것에 시간  보낸다며 정말 효율적인  맞는지 의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릅니다.


과장님께서는 태연하게 제 한글이 문제인 건지, 논리가 문제인 건지 보겠다며 행정고시 답안 형태로 한 번 풀어서 써와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자리에 가서 바로 목차부터 잡기 시작했죠. 몇 년 만에 답안을 쓰는 거였지만 그동안 연습한 게 있어 그런지 술술 써지더라고요. 과장님께서 제 답안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제 알겠다. 글의 논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한글을 못 하는 거구나. 이제부터 내가 개조식으로 쓰더라도 이해가 잘 되도록 쓰는 법을 알려주마."


저는 보고서를 쓸 때 먼저 긴 문장을 써서 논리를 세운 후, 문장마다 적당히 조사나 단어를 삭제하면서 개조식으로 고쳤습니다. 원래 문장을 알던 상태에서 그렇게 짧게 쳐낸 문장을 보면 뜻이 이해가 되지만 그 문장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과장님께 들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삼자 입장에서 문장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문장을 보면 무슨 뜻인지 추측이 되더라도 그렇게 추측하지 말고, 그 문장만으로 정확히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안목을 기른 것이죠. 그러한 훈련 덕에 잘 쓴 보고서와 못 쓴 보고서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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