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부처에서 선배의 정신 교육

다른 부처로 1년간 파견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파견을 가고 싶지 않았지만, 운영지원과에서 제가 재경직렬이어서 경제부처에서 잘하지 않겠냐라는 이유로 파견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딴 부처 가서 열심히 일 할 의지도 크지 않았고, 파견 온 사람에게 일도 많이 안 시켰기 때문에 매일 칼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무 사무관(과장님 다음 권력자로서 과를 책임지는 사무관)이 저를 회의실로 부르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참고로 그 부처는 선배가 후배에게 자연스럽게 반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야, ㅇㅇ야. 너 우리 부처 오고 싶지 않니? 우리 부처 오려고 파견 온 것 아니야? 이렇게 파견 기간 동안 대충 시간만 때우면 배우는 것 하나 없이 너네 부처로 돌아가야 한다. 알겠지? 너 똑똑한 거 같은데 열심히 좀 해봐. 그래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우리 부처로 올 수 있으니깐."

저는 순간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저는 제가 다녔던 곳에 만족했기 때문에 전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이게 바로 선배 사무관과 후배 사무관의 세대 차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행시 합격자들의 선호 부처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거든요. 승진도 느리고 월급도 적은데 바쁘고 힘든데 보상이 없는 곳보단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부처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선배의 정신 교육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3개월 후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으로 파견자인 제가 새로 생긴 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이 엄청 많았습니다. 강제적으로 열심히 하게 되었죠. 거기다 훌륭한 과장님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면서 사무관으로서의 역량을 쌓은 후 원래 부처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고 이제는 제가 연차가 쌓인 선배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가끔 후배들이 일 하는 것을 볼 때 '아, 저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한마디 해주고 싶다가도, 제가 꼰대 소리 들을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귀 기울여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때 주무 사무관이 저에게 정신 교육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 분은 정말 나를 생각해주셨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