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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04. 2022

달라진 교수님의 태도

저는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님 눈 밖에 났습니다. 교수님이 시키신 연구는 잘 안 하고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었거든요. 한 번은 교수님께서 연구실 컴퓨터를 사기 위해 견적을 뽑아보라고 하셨는데 게임용으로 보고 드렸다가 크게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석사만 겨우 졸업하고 연구실에서 나가 취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요. 교수님께서는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잊고 있었던 제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도 그렇고 좋은 소식도 가져왔으니깐요. 저는 교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실 줄 몰랐었는데 연락드리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대학원 연구실로 찾아갔습니다. 마침 랩미팅(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이 맡은 과제를 교수님과 대학원생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회의로, 제가 대학원생일 땐 정말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이 괴로웠던 시간) 중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를 바로 옆자리에 앉히시고는 편하게 후배들 하는 것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일부러 그때 오라고 하신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랩미팅이 끝나고 교수님께서는 20여 명 되는 대학원생들 앞에서 행정고시를 합격한 제자라며 제 소개를 거창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를 부를 때도 이름이 아니라 사무관 직함을 꼭 붙여 주셨고요. 나름 제가 선배라고 기를 팍팍 살려주셨죠. 교수님 방에 가서 그동안 속 썩여서 죄송했다, 논문 쓰는 법을 배운 게 합격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고 말씀드리고 앞으로 어떤 부처에 가는 게 좋을지 진로도 상담받았습니다.


그 후 저는 후배들이 있는 연구실에 가서 진로를 상담해주었습니다. 행정고시 준비하는 법도 알려주고, 공무원에 대해서도 (그땐 잘 알지 못했지만) 제가 아는 것을 말했죠. 다들 진지하게 제 말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아래와 같이 말하는 바람에 제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선배님, 혹시 예전에 밤새도록 게임하시다가 다른 교수님께 걸렸을 때 일이 많아 밤샌 거라고 뻥치신 분 맞으시죠? 교수님께서 자주 이야기하셨어요."




이렇게 옛 일을 떠올려보니 대학원에 다닐 때 저는 참 철이 없었습니다. 고시를 준비하면서 맘고생도 많이 하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진 것 같네요. 어쨌든 행정고시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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