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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03. 2022

보라매공원

저는 고시를 시작했을 때 신림동 고시촌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다닌다고 이미 신림역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거든요. 1년 동안은 신림역에서 매일 버스를 타고 고시촌에 있는 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이 늦었습니다. 그래도 꼭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보라매공원까지 걷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가는데 30분, 공원 트랙 도는데 30분, 오는데 30분 도합 1시간 반을 걸었습니다. 갔다 오는 길은 도심 한가운데였습니다. 항상 사람들로 붐볐고, 그 사람들은 취해서 즐거워 보였습니다. 저는 외롭고 힘들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만 보다가 이렇게 생동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요.


보라매공원에 원형으로 된 트랙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방향으로 트랙을 돌고 있었습니다. 저도 혼자만 튀기 싫었기 때문에 무리에 슬쩍 끼어서 동네 사람인척 함께 돌았습니다.


보라매공원을 돌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사서 고생하고 있을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일까. 고시에 붙으면 정말 행복할까. 내 친구들은 뭐 하고 있을까. 지금 나랑 도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불쌍하겠지? 고시생들은 지금 공부하고 있을 텐데 난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되는 걸까.


얼마 전에 후배가 저에게 일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 일이 재미가 없다며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잘 선택한 것인가 의문을 가지더라고요. 잘 타이르긴 했지만, 사실 저도 이 길이 맞나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보라매공원을 돌던 것을 생각하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데 꽤 도움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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