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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08. 2022

항상 준비된 과장님

일을 정말 잘하신다는 과장님을 모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과장님께서 하신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적어볼까 합니다. 일이란 무릇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란 걸 깨닫게 해 주셨거든요.


제가 부처의 퇴직자 관리 업무를 할 때였습니다. 어떤 업무냐면요, 먼저 퇴직자를 분야 별 전문가로 지정합니다. 업무를 하다가 퇴직자에게 자문을 받으면 그 실적을 정리하고요. 가끔은 그분들을 모시고 간담회도 합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인 데다가 장관님의 관심 업무라 대충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장관님이 주재하시는 회의에 참석하실 때마다 저에게 퇴직자 활동 실적을 업데이트한 자료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실적을 자주 업데이트하는 것도 부서에 쓸데없는 부담을 주는 것인데 왜 이걸 자꾸 챙겨야 하냐고 과장님께 투정을 부렸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장관님이 언제 찾으실지 모르는 자료는 항상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며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관님께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과장님께 물으셨습니다. 그 퇴직자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냐고. 과장님은 미리 준비한 자료를 바로 보여드렸고 장관님께서 굉장히 만족하셨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일은 이렇게 하는 거라며 저에게 의기양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간부가 찾을지도 모르는 자료를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안도 바빠 죽겠는데 나중에 물어볼지도 모르는 것을 미리 챙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죠. 하지만 저는 그때 과장님께서 하신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 일 잘하는 주인공처럼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도 가끔 그 과장님을 따라 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 어린이 교육 행사를 온라인으로 바꿔 추진하는 것을 미리 검토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국장님께서 코로나19가 행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셨을 때 바로 그 대응 방안을 보고드릴 수 있었죠. 다만, 이렇게 일할 때 단점도 있습니다.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해서 사서 고생이냐는 주무관의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마치 제가 예전에 투정 부렸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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