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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Feb 06. 2022

과장님을 잘 만나면 좋은 점

제가 신입일 때 실장님은 굉장히 스마트하시면서도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당시 간부 중에 제일 모시기 어려운 분으로 꼽히셨죠. 사람들은 실장님께 찍히면 회사 생활 내내 힘들 거라고 겁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에 보고드릴 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고 중에 세세한 것도 자세히 캐물으시기 때문에 실장님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실장님께 보고드릴 게 생겼습니다. 장관님까지 결재를 받는 건인데 저는 차관님까지 직접 보고 드리고 결재를 받아야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매년 비슷한 내용으로 결재를 받는 건이라서 별로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신입으로서 실장님과 차관님께 처음 보고를 드리는 것이어서 의미가 컸습니다.


일단 과장님께 열심히 배워가며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국장님께 가져갔더니 작년에도 보셨던 내용이라며 별문제 없이 결재를 해주셨습니다. 실장님 차례였습니다. 떨려서 도저히 이대로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때부터 보고서 내용을 자세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장님께 보고드릴 때도   사업별 쟁점을 찾아 메모하고 집행률 같은 숫자를 외웠습니다.


꼬박 하루를  보고 실장님께 보고를 드리러 갔습니다. 심지어 실장님께서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결재를 받으러 서울까지 갔습니다. 결재판을 드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소개를 드렸습니다. 실장님께서 저를 보시며 과장이 누구냐고 물으시길래 ㅇㅇㅇ 과장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장님은 ' 그러냐'라면서 보고서 내용도 보지 않고 바로 서명을 해서 넘겨주셨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아니 다행이었습니다. 별문제 없이 결재를 받았으니깐요. 세종에 돌아와서 과장님 성함만 물으신 후 내용도 안 보고 결재를 해주셨다고 했더니 다들 '역시 과장님을 잘 만나야 일이 편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 실장님이 과장님을 매우 이뻐하시고 신뢰하셨더라고요. 저의 첫 과장님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다 미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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