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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07. 2021

지옥 가는 꿈을 꾸시는 과장님

저도 그 꿈을 꾸게 될 날이 올까요

제가 신입일 때였습니다. 과장님께 10장 정도 되는 보고서를 드렸었고, 과장님께서 일부 첨삭을 하시고 돌려주셨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다시 인쇄하기에는 종이가 아까워서 수정한 페이지만 뽑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과장님께서 잠깐 저보고 앉아보라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가끔씩 지옥 가는 꿈을 꾼다. 염라대왕 앞에서 그동안 낭비한 종이를 씹어 먹는 벌을 받는다. 이 사무관이 종이를 아끼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벌은 내가 받겠다. 앞으로 보고할 때는 다 뽑아서 가지고 와라."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지만, 지금은 과장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의도가 저는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일에만 집중해라, 그 외의 것들은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저는 전체를 인쇄할지 수정한 부분만 인쇄할지 갈등합니다. 수정한 부분만 인쇄해서 중간에 끼워 넣었다가 줄이 뒤로 밀린 것을 보지 못해서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 과장님은 제가 신입일 때 이런 고민을 안 하게끔 해주셨죠. 그런 과장님 밑에서 일하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습니다.


다른 부처에 제 동기는 벌써 서기관을 달았습니다. 저는 과장이 되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저도 지옥에서 종이 먹는 꿈을 꾸는 날이 오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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