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Dec 08. 2021

때로는 삽질이 답

저는 공무원이 되기 전에 영상 저장업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를 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죠. 주로 하던 일은 고객이 기계 작동이 잘 안 된다거나 하는 불만을 제기하면 이를 접수해서 소프트웨어 상에 버그를 찾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한 케이스가 배정되었는데, 설명이 딱 한 줄 있었습니다. "영상이 CD로 구워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천수만 대 이상의 기계가 팔렸는데, 갑자기 이제 와서 CD Writer가 작동이 안 된다니요. 황당했습니다. 혹시 영상에 문제가 있나 해서 고객의 영상을 받아 몇 번을 CD에 녹화해봤지만 잘 작동했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몰라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팀장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팀장님은 일단 시중에 있는 CD를 종류별로 다 구해서 정말 안 구워지게 맞는지 문제를 재현해보라 하셨습니다. 저는 팀장님의 조언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평소 아주 스마트하게 일을 처리하시는 팀장님이 자기일 아니라고 이런 삽질을 시키다니.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어서 브랜드별로, 용량별로, 타입별로 CD를 수십 장 사서 영상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려고 프로그래머가 됐나 싶었죠.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다 보니 정말 S사의 CD가 L사의 CD Writer로 저장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찾았습니다. 그 업체에 직접 문의해서 몇 년도 어느 공장에서 생산된 CD Writer와 S사의 CD가 호환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는 생산보고서까지 받았습니다. 결국 원인을 알았기 때문에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보면 가끔씩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분야인 경우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어려웠죠. 이럴 땐 뭔가 얻어걸리기를 바라며 일단 구글에서든 도서관에서든 닥치는 대로 다 찾아봅니다. 그게 꽤 효과가 있더라고요. 이런 삽질 정신은 회사 다닐 때 팀장님께 배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지옥 가는 꿈을 꾸시는 과장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