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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May 10. 2020

42.195 마이런

이렇게 달리는 방법도 있다 / 첫 온라인 마라톤

코로나 사태로 많은 대회가 취소됐다

대회뿐 아니라 겨울에서 봄을 지나오는 동안 사실상 다양한 사회적 활동 자체가 어려웠으니 그깟 마라톤대회 못 나갔다고 억울하단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3월에 참가 예정이었던 나고야 마라톤은 참가비만 무려 18만 원에 육박했고 대부분의 일본 대회가 그렇듯 참가비도 환불되지 않아 더욱 마음이 쓰리던 중 구미가 확 당기는 메일을 받았는데 취소된 이 대회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듣던 중 반가운 내용이었다


온라인 마라톤


방법은 이랬다

대상은 기존 대회 참가 예정자

(경쟁률이 높아 추첨에 당첨됐었다)

일단 기록 측정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다

회원 가입도 하고 메일로 안내받은 순서대로 참가신청을 하면 준비는 끝

이 대회의 기록을 측정할 어플이 중국 어플이라 넘쳐나는 중국어에 잠시 정신이 혼미했었다

결국 상세히 사진과 함께 안내된 메일과 한 줄 한 줄 비교해가며 조심스럽게 가입에 성공


달리는 방법은 두 가지

풀코스 42.195를 한 번에 뛰거나 네 번으로 나눠 한번에 10.55씩 4일간 연속으로 뛰는 것

실내, 혹은 실외를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달리기를 할 환경이 아닌 참가자를 배려한 방법이 아닐까

42km를 한 번에 뛰기가 부담스러워 4일간 연속으로 뛰는 쪽을 선택했다

풀코스 거리가 나올 장소도 여의치 않고 혼자 뛰어야 하는데 급수문제, 달리기 사이의 돌출 상황도 있을 수 있어 나눠서 달리기로 했다

10km 정도야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온라인 대회라도 강제성이 있다 보니 내심 부담은 있었다

기상 정보를 살펴 가장 날씨가 좋을 예정인 날로 4일을 골랐다

10.55 이상을 뛰어도 상관없지만 기록은 하루 10.55만 인정되며 무조건 4일간 달려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도 좀 꺼려져 그간 제대로 몸을 쓰지 못했는데 괜찮을까라는 마음 한편의 부담을 눌러 담고 스타트



첫날

힘들었다

이  달리기가 정말 가능할까 싶을 만큼 숨이 찼다

한참 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3km라고 해서 좌절했다

내가 이렇게 망가졌구나 싶어 뛰는 중에도 우울했다

지루하지 않도록 4일간 조금씩 코스 변화를 줬고 첫날은 자주 달려 익숙한 해안공원을 선택했는데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강해 정신없이 싸대기를 맞는 기분이 드는 것을 참고 달려야 했다

아 죽겠다

그냥 버텨보자

그렇게 버틴끝에 첫날의 달리기를 끝냈다

끝나고도 끝났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진이 쏙 빠졌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둘째 날

각오를 새롭게 하고 아끼는 새운동화를 꺼내신고 길을 나섰다

어제처럼만 뛰면 된다

죽네사네했어도 결국 달리기는 끝났잖아

의외로 전날보단 몸이 가벼웠다

이 달리기를 위해 술도 안 마시고 점심을 간단히 먹으며 식사조절을 한 보람이 있는 걸까

전날보단 잘 뛰었다

좋아!!



셋째 날

눈뜨면서부터 다리가 무거웠다

후유증인가

자유롭게 달리는 중이라면 이런 날은 휴식으로 다리를 풀어주고 싶은데 그러면 이대회를 망치게 된다

그냥 어떻게든 한 번에 풀코스를 뛰고 끝낼걸 그랬나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다

오후에 소나기가 올 수도 있다고 해서 일단 빨리 밖으로 나갔다

이날의 새로운 코스는 언덕길을 통과하는 경사로가 포함되어 있었고 기어올라가다 반쯤 죽을뻔했다

평평한 공원길을 두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지만 새로운 길을 뛰니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머릿속으로 계산한 거리를 맞추며 3일째의 달리기도 성공

이제 하루 남았다!



드디어 마지막 날

어떻게 뛰어도 이 챌린지는 성공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3일간 달리기를 하고 난 뒤라 피곤했다

쉬고 싶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마무리하러 나가자

또 다른 코스지만 이번에도 2km 정도의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힘들지가 않았다

왜?

내가 종종걸음 치듯 살살 뛰어서?

오르막이 힘들지 않은 건 달리기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힘들기는커녕 재밌기까지 했다

다시 대회에 나가게 된다면 그땐 달리는 중 만날 언덕길에 미리 겁먹지 않을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생겼으나 기록으로 본다면 이날의 기록도 그리 시원치는 않았다

마지막 300m를 남겨두고 긴 신호를 기다려야 했는데 이번 달리기는 뛰는 동안 거리에서 신호에 걸릴 때마다 발을 풀지 않고 제자리 뛰기라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거리에서도 혼자 촐랑촐랑 쉬지않고 몸을 움직였다

신호가 뚫리면 쭉 내리막길을 300m만 달리자

이 색다른 대회의 끝은 어떤 기분일까

드디어 피니시!


성취감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에 그저 감격하고 또 감격했을 뿐이다



성공한 참가자들에겐 본 대회에서 증정될 예정이었던 메달과 기념티셔츠를 보내준다고 한다

"난 자격이 돼

그러니 기쁘게 기다릴게"


이번 달리기의 또 다른 소득이라면 코스 짜는 재미를 알게 됐다는 것

자신만의 주로를 가지고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새로운 재미를 깨닫게 됐다

달리기를 하면서 거리에 대한 감이 생겼고 어디를 어떻게 뛰면 5km가 나오고 10km는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작은 코스 맵을 만든다

똑같은 길, 똑같은 동네인데도 달릴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이제나 저제나 상황이 나아져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산발적인 집단감염이 계속돼 당분간은 예전의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지난겨울 막연한 생각으로는 설마 봄 내내 가겠나 싶었지만 봄을 지나 우리의 여름도 코로나를 비껴갈 수 없다는 실감에 마음이 무겁다

언제쯤 다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이번 온라인 대회가 더없이 소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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