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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Jan 29. 2020

무엇을, 얼마나

회피가 답이 아님을.

PLEASE DO NOT DISTURB, 곰곰



   지난 1년 반 동안 영어학원에서 보조 선생님으로 근무했었다. 대학교 졸업을 하며 그만둔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날은 아이들과 마지막 날,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대개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다. 그러나 그날은 아이들이 해야 하는 분량을 다 채우고도 집에 가려하지 않았다. 그때, 평소 잘 따르던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랑해요."


   그 아이는 심지어 1년 반을 내리 함께한 아이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사랑한다 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아이에게 완전한 타인인 날 보고 사랑한다 표현해주다니. 솔직히 감동받았다. 난 대단한 선생님도 아니었는데.


   퇴근길 버스 안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는지 생각해봤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슬프지만 담담하다. 어릴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했었지만 커가면서 잘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꽤 감정 표현에 미숙하다. 사랑을 넘어 기쁨, 슬픔까지. 언젠가부터 “미안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아마 미안하지 않은 일에 미안해다 얘기해야 하고 내 잘못이 아님에도 죄송하다 얘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 그런 듯하다. 사실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얘기라 생각한다.


   나는, 또 그리고 우리는 어떤 감정을 얼마나 숨기며 살아가는 걸까. 얼마나 표현에 머뭇거리고 있는 걸까. 점점 커가면서 감정 표현에 서툴게 되었다. 어렵다. 너도 너의 짐이 있을 텐데 내 짐까지 주고 싶지 않으니까. 나의 슬픔이 너의 발목을 잡을까 두려웠다. 난, 그렇게 점점 표현에 책임을 져야 했고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었다. 물론, 회피가 정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단지, 어려운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것. 그뿐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해준 사랑한다는 말이 회피 안에 갇혀있는 나를 깨웠다. 이제는 좀 놓으며 살라고. 내 2020년 목표는 단 하나다. 작년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제는 회피에서 벗어나야 할 듯싶다.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려 한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바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감정을 정당하게 얘기해도 되는 자리에서는 더 이상 숨고 싶지 않다. 배려하는 마음에서 싫다 표현 못한 나는 너의 모든 불만을 들어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점점 후련한 하루하루를 모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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