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곰 Jan 22. 2020

또 다른 내가 되어

수도꼭지

해 지는 하늘


   내 어렸을 적 별명은 수도꼭지였다. 툭하면 잘 울어서. 누가 울면 따라 우는 사람. 주변에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초등학생 때 수련회 가면 작정하고 애들 울리는 마지막 날 밤. 부모님 얘기가 나오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친구들. 바로 나였다. 정말 심하게 울어서 친구 부축을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는 그런 수도꼭지였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면 눈물부터 벌컥 나고. 조금만 감동적인 영상이 나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울곤 했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성인이 된 지금도 화가 나면 소리는 못 지르고 바로 눈물부터 흘린다. 애니메이션, 광고, 드라마, 예능, 다큐 가리지 않고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같이 보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먼저 운다. 어렸을 땐 그런 내가 참 싫고 나를 숨기고 싶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하나 있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어버이날 관련된 광고 영상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영상이 굉장히 감동적이어서 수도꼭지인 나는 반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엉엉 울었다. 아마 그 당시 내 감성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듯하다. 지금 생각해도 학교에서 그렇게 울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이런 내가 굉장히 싫었고 고치고 싶어 갖가지 노력을 해봤다. 제일 먼저 잘 우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단 하나였다. 그 사람에게 공감이 가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그거 딱 하나이다. 그래서 공감을 최대한 덜 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냥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해보고 안 해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수도꼭지는 내 본성이기에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한 가지 전환점이 생겼다. 최근 리뷰를 올리려 영화를 보던 도중, 아니나 다를까 수도꼭지가 틀어졌다. 울면서 본 영화의 리뷰를 쓰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내 수도꼭지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 누구보다 공감에 자신이 있기에 ‘나’의 입장에서 쓸 수도 있고, ‘그대’의 입장이 될 수도, ‘우리’의 입장이 되어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숨기고 싶었고 싫어했던 수도꼭지가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글 쓰게 해주는 힘이자 강점이 되었다. 벌써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19일이 되었다. 그동안 7개의 글을 올렸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 혼자만 보던 나의 글을 공유하고, 그날의 감정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곰곰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중 가장 뿌듯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숨기고 싶던 나의 모습이 또 다른 나를 작가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냈다.




   안녕하세요, 곰곰입니다. 인사를 드린 지 벌써 이 주가 지나 19일이 되었네요. 제 글을 봐주신 모든 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정말 하고 싶었고 쓰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던 제게 용기를 넣어준 지인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허무했던 제 삶에 활기를 되찾아준 건 바로 글이었습니다. 혼자서만 쓰고 보던 글을 처음 올리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점차 설렘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가볍게 하지 않겠습니다. 제 글을 읽고 상처 받는 이 없게 하기 위해 수백 번 수만 번 고민하며 쓰고 있습니다. 이 고민의 과정까지 저는 즐기려 합니다. 제 2020년은 행복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인사드렸던 마음 변하지 않고 여러분께 행복과 위로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누군가의 지친 하루에 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행복한 하루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적겠습니다. 내일모레면 설 연휴가 시작되네요. 설 잘 쇠시고 편안한 연휴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 곰곰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귀 기울여 들어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