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ibal, 2014

일말의 감정도 없는 진공 상태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사랑'

by 김뇨롱

'사랑'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감정인 것 같아 보입니다. 사랑에 대한 명언도 많고, 사랑을 다양한 감정과 빗대어 표현하는 말들도 많지요. 바이런은 '우정은 날개 없는 사랑이다'라고도 했지요. 물론,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해 단순히 관심이 많은 게 아니라 사랑의 종류가 그만큼 '다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유년기를 지내는 소녀가 청소년이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세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물론 그 안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뒤섞여 있지요. 심지어 두 개가 섞인 것도 나옵니다. 어떤 감정은 마냥 좋지만도 않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겁니다. 100%라는 것은 없다는 거죠. 아마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순도 100%를 의도하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약간의 '불순물'들이 섞일 수 있지요. 사람의 감정을 한 순간의 것으로 표본을 만들어본다면 순도에 가까울 수는 있겠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영화 내용이 그대로 더 이어진다면 잘 아실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미묘하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곧 그러한 감정의 다양화가 감정의 순도와 반비례한다는 것을 말이죠.


꽤나 거창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한니발]은 그런 불순물 투성이거나, 혹은 너무 순수해서 순도 100%에 가까운 사랑을 표현하는 드라마였던 것 같습니다. 한 자리에서 코스 요리를 맛보는 독자들 마냥 그 자리에서 즐기는 것이 드라마 에피소드 제목을 볼 때 느껴지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만 사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렇게 미로같이 만들어둔 드라마도 드물 겁니다. 물론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요.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감성적'입니다. 뭐가 어떻게 치밀하고 대단하고 분석적이지는 않아요. 그런 느낌의 말을 잘 만들어낼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여기서는 확실히 시각적인 세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세심하고 아름다워서 가끔은 우리의 두 눈이 찔릴 것만 같은 두려움마저 느껴지지요. 느린 호흡의 중간에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기믹에도 아주 능숙합니다. 우리는 과학자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능숙한 마술사나 사기꾼을 만난 기분이 듭니다. 한니발 렉터 박사의 이미지도 그러했지요. 심지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보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미로에서 발을 뗄 때 이미 그의 정체는 뻔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 미로의 목적지이자 정체는 오히려 그의 마음에 남고 남을 '감정'에 대한 것이었다는 걸요.


고급 식사를 즐기는 코스는 비단 음식에만 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가끔 음식에 대한 애정을 마치 이성에 대한 애정처럼 표현하곤 합니다. 인간이 지니는 7대 죄악은 어떻게 보면 모두 '욕심'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사랑의 뒤틀린 모양도 거기 속합니다. 식욕이 애욕과 다르지 않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차분하게 아페리티프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알아가는 겁니다. 그 코스에 대해, 그 맛에 대해, 그 향을 맡고 바라보고 말해보고 느껴보고... 그러다 시즌 1 막바지 가서야 한니발 렉터는 그렇게 말합니다. '우정'이라고 말이죠. 미로의 1/3 정도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붕 뜨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 살벌하고 무자비한 살육의 나날 가운데에서 튀어나온 말 치고는 꽤나 부드럽고, 온전한 것이었거든요. 물론 이미 이쯤 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드라마는 살인 자체보다 - 물론 살인 세트를 만드는 특수효과 팀에게는 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만 - 살인으로 인해 벌어지는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 고통의 표현을 소름 끼칠 만큼 미학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윌 그레이엄의 수사 장면이나 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면 빠져들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시선에는 한니발의 몫도 있었을 겁니다. '순수함'과 '아름다움'. 한니발은 윌을 그렇게 평가했었죠. 마치 순수한 재료로 맛을 낸 소담한 음식을 아껴가며 맛을 보듯이 말이죠.


그래서 이쯤에서 우리는 어딘지 모를 미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살육자'로서, '사냥꾼'으로서 향을 맡는 한니발 렉터가 윌의 뒤에서 은근슬쩍 그의 향을 맡습니다. 애비게일의 향을 맡을 때와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인 느낌이 듭니다. 아마 그건 당연할 겁니다. 윌 그레이엄은 반격자이자, 대적자이자 맞서는 자이기 때문이죠. 드라마는 결코 윌 그레이엄이 렉터 박사에게 이끌려서 순종적으로 구는 인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물론, 중간에 뇌염으로 고통을 받고 시즌 1 막바지 가서는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지만 아마 다른 인간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윌 그레이엄만큼 자신의 의지를 투영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시즌 2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친구'란 동등한 관계에서 가능하다고 하죠. 윌 그레이엄의 대적자로서 보이는 의지는 자칫하면 기울 것 같은 천칭에 균형감을 선사합니다. 물론 '제1 예비 식재료'로서, 그는 처절하게 한니발에게 지배당하고, 그 끝에 망가지고 말지만 자신 스스로를 잃지는 않았죠. 딴에는 그러한 지배감이 한니발의 잔인함을 부추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성적인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장치로도 동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아끼는 음식은 나중에 먹을 심산으로 소중히 옆으로 밀어놓듯이요.


그러던 것이 시즌 2로 가면서 조금은 달라집니다. 아니, 많이 달라집니다. 이 어두운 톤으로 일관하는 드라마가 윌의 태도에 맞물려 변하기 시작합니다. 한니발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병도 치료하게 된 윌은 이제 전처럼 약하지 않습니다. 아니, 약할 수가 없습니다. 그를 만나고 난 뒤 윌도 변해버렸습니다. 처음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변해가는 자신을 느낍니다. 모든 것은 의도대로 - 자신이 당한 것을 갚기 위해,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최고의 방법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는 '한니발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로 합니다. '우정'이라는 미명하에 자라난 이상한 관계가 똬리를 틀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그건 지나칠 만큼 한니발을 자주 미소 짓게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자신이 만들어 둔 덫을 망가트려서 다시 윌을 끄집어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그런 그와 상담하는 시간을 비워둔 한니발의 상태도 제정신은 아니었을 겁니다. 우정, 우정이라고, 쉽게 내뱉지도 않던 말이 그렇게 익숙해지고 지겨워질 무렵, 차분한 핑크 톤의 셔츠를 입은 윌이 말끔한 인상으로 한니발의 사무실을 찾아옵니다. 아마 그는 이 시점에서 확신했을 겁니다. '이것은 우정. 그리고 그 이상'이라고. 미로의 중간에서 우리는 확신합니다. 한니발의 눈을 통해 우리는 윌의 변한 눈동자와 마음을 휘어잡는 말들, 그리고 좀처럼 쉽게 보여주지 않지만 한 번 볼 때마다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미소를 보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 이상'이라고. 하지만 드라마는 더 진전시키는 대신 주변 인물들을 통해 조금씩 말을 흘려댑니다. '친밀감' '과도할 정도의 집착'이라고도 하죠. 두 사람은 맹렬하게 서로를 노려보면서도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거친 소통을 하죠. 어떻게 죽일까. 죽는 모습을 어떻게 지켜봐 줄까. 아마 이게 그들의 애정 표현이었을 겁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인정할 힘도, 올바름도 없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던 겁니다.


한니발의 지배력이야 시즌 1부터 봐왔으니 뻔한 것이었겠지만, 그래서 그토록 무너진 한니발을 지켜보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죠.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라고. 그리고 미로를 통해 감정에 점점 더 다가갈수록 한니발의 말들은 조금씩 일상의 것들을 닮아갑니다. '우정'에서 '가정'이 되고,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 나가면서 꼴사나운 가족 흉내를 내려하는 겁니다. 아마 그 자신이라면 '꼴사납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차분히 준비 해나갔겠지요. 윌로서는 자신이 지금 작전을 짜고 있다는 사실에 무던히 의지했을 겁니다.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니발에게 점점 더 끌리고 있었으니까요. 시즌 2 동안에는 각자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키우는 동물과 먹는 동물은 다르다'라고.


그러던 것이 시즌 2 막바지에 다다를 때 터져버리고 맙니다. 한니발이 윌의 계략을 알게 된 것이죠. 애매하고 모호하고 거칠기만 했던 둘의 감정은 그대로 폭발해 버립니다. 윌은 그 사이에도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의지했던 '작전'이라는 말에 기대고 싶다가도 빠져드는 한니발을 보면 끄집어내고 싶어 집니다. 애비게일이 살아있다는 걸 보면서 그것은 더욱 확신에 가득 차게 됩니다. 어차피 FBI는 그들의 '친구'도 '가족'도 아니었으니까요. 잭은 그를 도구로서만 보았고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힘든 점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죠. '그만두거나 아니면 아예 계속하거나' 뿐이었습니다. 그의 곁을 지켜주고 공감해 준 건 다름 아닌 한니발과 애비게일이었죠. 그렇게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꿈이 한 끗차이로 어긋나고 맙니다. 배신은 배신대로 물들고, 애비게일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면서 한 순간의 봄과 같던 사랑이 쓰라린 끝을 맺고 맙니다.


시즌 3은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토록 먼 길을 떠나왔지만 결국 한니발은 윌을 잊지 못했습니다. 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나간 뒤에야 봄인 것을 알았던 것처럼. 한니발은 자신의 상담사까지 대동했는데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에펠탑과 피렌체, 미식과 낯설고 부유한 자들, 심지어는 그들을 잡아다 요리를 해 먹어도 시원찮습니다. 그 깊은 갈증과 고독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것은 바로 그 상담사입니다. 윌은 고군분투합니다. 애비게일을 빌어 계속 기억해 대는 건 결국 한니발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미로의 후반부가 점점 모양을 분명히 해갑니다. '사랑'이라고, 주변에서 조금씩 말을 꺼내오기 시작합니다.


그토록 고통스럽고 치열하고 더러웠던 끝에도 너무나 가볍고 속삭이는 듯한 수줍은 재회. 오직 그것만을 위해 윌은 애비게일의 망령까지 동원해 그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니발은 그에게 바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상처받은 심장이 너무나 크게 부풀려져서 보듬지도 못할 만큼 자라난 모습을 말이죠. 그렇게 말합니다. 이게 그가 말하는 방식입니다. '당신을 용서할게요'라고 윌이 말했지만 한니발은 알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신이 윌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윌은 분명 느꼈습니다. 그 심장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그자와 다름이 없노라고. 그 확신이 미묘한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둘은 다시 재회하고, 고비가 겹쳐지면서 서로로 인해 망가져버린 사람들 틈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그마저도 이겨냅니다. 좀 더 상처 입고 헐벗은 그들에게 주어진 두 번째 재회. 이번에야 말로 진짜 재회입니다. 그들이 풍기는 냄새는 이제 더없는 '오랜 연인'의 것입니다. 서로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어린애들이나 쓸 법한 말로 '이제는 안 볼 거니까' 라든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은 하지만요. 한니발은 한 번도 그를 내친 적은 없습니다. 멀리에서 떨어트려도 늘 그 허리에는 줄이 있었죠. 죽일 듯이 그를 내몰았지만 결국 그건 시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를 '사랑'했으니까요.


하지만 윌은 여기서 선을 긋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대고 있던 기둥을 놓는 순간이 너무나 두려워 참을 수 없어집니다. 어떻게든 자신을 떼어내야 선을 넘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미 자신의 감정은 너무나 확고함에도 한니발의 감정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감정의 교류, 우정, 마음, 배신, 아픔, 용서... 그 모든 것을 넘어왔음에도 다시 누군가를 품고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를 먹을 남자입니다. 그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있는 세상으로 한니발을 데려오더라도 결국 일은 벌어질 것이고 자신은 어쩌면 먹혀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윌은 이별을 고합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게임을 하고 있다'라고, 애비게일이 하지도 않은 말을 되뇌며 그렇게 말합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라고요. 그렇게나 싫은 건 결국 그만큼 그를 '사랑'한다는 거겠죠. 어차피 잭은 여길 들이닥칠 예정입니다. 같이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여기 잡아둘 수도 없는 마당에, 윌은 그렇게 말한 거죠. 붙잡히는 걸 바라지도, 그렇다고 그에게 사랑을 빌미로 먹히고 싶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한니발은 달랐습니다. 그는 부쩍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재미를 위해 윌을 체서피크 리퍼로까지 몰던 남자가, 이제는 윌의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며 잡아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윌이 한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자신을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을 거라는 말...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손으로 쓰거나 말로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갈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할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듯이.


그리고 시간이 흐릅니다. 윌은 자신이 마음먹었던 '안정적인' 것에 흠뻑 빠져보기로 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안정적이고 목가적인 생활.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그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니발의 상담사가 그렇게 말했었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그는 은연중에 깨닫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전부터 알았겠죠. 그 수렁에 빠지면 더 이상은 종잡을 수 없을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잭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다 해봅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를 가만 두질 않습니다. 모두가 마치 한니발 렉터 박사가 시킨 것처럼 그를 부추깁니다. '부탁인데 제발 잭이 찾아오면 그 뒷문으로 도망치지 말아요.' 다시 달콤하고, 정중한 거짓말이 그를 홀려댑니다. 불에 타들어가는 편지를 바라보며 눈빛이 깊어집니다. 이제는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될지도 모르죠. 갈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결국 일은 일어납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메워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건 오히려 불청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미끼였죠. 그건 단지 윌이 한니발을 만나러 가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제까지 쌓아왔던 두 사람의 열망, 감정, 드디어 찾아낸 '사랑'이 폭발하면서 온갖 살육전이 벌어졌던 것이겠죠. 그토록 서로 '사랑'하노라고, 그토록 서로가 어떤 모습인지를 분명히 봤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윌은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선택할 수도 없고, 안타깝게도 그 자신도 한니발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이죠. 입을 깨물며 말하던 '작별'은 결코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부드럽게 넌지시 묻는 말들, '이렇게 하면 상을 줄 건가요?' '더 이상 다정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을 건가요?'라고 하는 말들... 오히려 거친 말들로 부정하고 내치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미 한니발은 알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분명한 '사랑'이고 더 이상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마무리는 윌이 짓습니다. 그는 푸른 수염의 '마지막 아내'가 되기로 합니다. 그의 살인을 정정 당당히 밝히는 아내가 아니라, 그의 진정한 마지막 아내가 되기로 한 겁니다. 그가 그토록 한니발을 붙잡기만 하고 더욱 입 맞추지 못했던 건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 해도 자신이 먹히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윌이 그리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살인범들의 작품들을 보며 그런 말을 했었죠 '이건 내 작품이야'라고. 그리고 윌이 그리는 사랑으로서의 작품은 한니발과 같이 동등하게, 함께 마지막을 보는 것이었을 겁니다. 바로 그게 그의 작품인 거죠. 우정, 분노, 배신, 용서...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감정의 그 끝에 서 있는 단 '한 사람'. 단 한 명에게 기우는 가장 순수한 감성. 가장 남성적이면서 폭력적이고 미학적이기까지 하며 어떤 드라마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깊게 그려낸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마지막 선택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니발만큼, 윌도 한니발을 사랑했었고 그 사랑을 자신의 방식대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 사랑하게 된 사람을 자신의 방식으로 온전히 사랑하는 것만이 남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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