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알게 된 것은 약 3일 전이었다.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동네 모퉁이 상점에 들르는 것을 재차 발견했었다. 사들고 나오는 봉투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매일 품목이 비슷했다. 후르츠 시리얼에 우유, 아니면 두유. 아이를 키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파리한 얼굴에 대충 멘 밀라 크로스백과 가벼운 차림이 그런 생각을 부추기지만 사실 그녀는 미혼에 이제 막 서른다섯의 유치원 교사이다. 후반 사항은 방금 전에 알았다. 밀라 크로스백으로 경정맥을 압박할 때 그녀가 발버둥 치면서 흘러나온 지갑으로.
이제 이 집 안에서 소란스러운 건 그녀가 들고 있던 핸드폰뿐이다. 진동이 요란스럽길래 방금 전에 꺼버렸다. 그저께는 골목 돌아서 집 근처까지 가다가 시선을 끌었는지 돌아가는 게 보여서 따라 들어가지는 못했다. 다행히 얼마 뒤 들려오는 손잡이 돌리는 소리에 근처로 가서 창가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찾아냈다. 석조 계단을 지닌 다세대주택의 2층집이라 평소 즐겨 쓰던 방법을 쓰기도 좋았다. 허술한 철제 현관 보안, 신발만 벗으면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소리에 마트를 다녀오는 뒤로 따라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엄지 아래에서 빠르게 요동치던 동맥이 그대로 물을 담는 고무호스처럼 눌려 빡빡해지다가 서서히 주변 피부로 긴장을 퍼뜨리는 게 느껴진다. 숨 조절로 이어지던 것이 뚝 끊기면 장악감이 느껴지는 게 즐겁다. 보통 난 이런 소소한 감각에서 즐거움을 찾는 편이다.
그제야 나는 방 주변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출근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방 한편에는 화장품이 널브러져 있고 옷가지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있다. 내가 조금만 더 도와주면 강도사건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와중에 나는 손목에서 슬금슬금 올라온 라텍스 장갑을 재차 다시 끼웠다. 이번 전리품은 꽤 즐겁다. 그녀 목에 새겨진 밀라 크로스백의 벨트 모양이 선명하게 그녀 목 언저리에 새겨져서 신호등처럼 점 세 알로 반짝인다. 원래부터 타고난 점처럼 그렇게 이쁘게 만들어져 있다.
동작만 존재하고 증거는 없는 상황. 이제 정리만 하면 그만이다. 꺼버린 핸드폰을 그대로 방에 던져놓고 자리를 뜨려는데 순간, 풍경음 사이로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니 -
철제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기분 나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탁, 타닥 -
고무 밑창이 석조 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절실히 바랐다. 그 소리가 이 다세대주택에 마련된 반지하층으로 내려가며 옅어지거나 적어도 1층 층계참에서 멈추기를.
발자국 소리는 조금씩 리듬을 깨트렸다. 스슥, 타탁 하며 주변을 맴돌며 멈추거나 어딘가를 살펴보듯 화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반지하층에 내려간 건 아닌 것 같다.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불현듯 라텍스 장갑으로 땀을 훔치다가 그 흰색 표면에 맺힌 방울을 바라보았다. 이게 여기 어디에 스민다고 해서 누군가가 알아내거나 찾을 수 있을까?
집중하자. 나는 곧바로 라텍스 장갑째로 몸에 문질러 땀을 흡수시킨다. 천천히 주변 물건들을 그대로 두고 움직였다.
거실로 나왔다.
창문, 하지만 제대로 열려있는 건 없다. 종종걸음으로 화장실과 방을 살폈다. 겨우 하나 더 있는 방은 창고처럼 쓰이고 있어서 즐비한 물품들 때문에 뒤에 자리한 창이 막혀있었다. 아쉽다. 저 방향은 그대로 내가 그녀를 따라간 골목에 바로 착지할 수 있는 통로였는데.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부엌 쪽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널브러져 있던 봉투를 밟는 바람에 지구르 소리가 난다. 몸에서 땀이 실시간으로 새어 나오는 게 느껴진다.
그걸 알아챘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점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달릴까? 차라리 들키고 뭐고 떠나서 주방 쪽에 마련된 좁은 창으로 몸을 밀어 넣어볼까? 내 허리둘레는? 탈골이라도 해야 하나? 어처구니없을 만큼 생각이 쏟아져내린다.
아니, 그저 한 명 더 죽는다고 문제 되나? 어차피 이 공간에 오는 작자라면 면식이 있는 인간이 아닐까?
대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작업에 돌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이미 땀을 훔쳐낸 라텍스 장갑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게다가 상대가 남성이라면 성공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여성을 고르는 것은 성적인 것도, 원한 때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내 손가락이 짧고 손바닥이 두툼해서 가용 범위가 좁다는 게 이유였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목이 두껍고 힘이 강하기 때문에 제압하는 데 시간과 힘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여자들처럼 좋은 범죄도구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경우도 많지 않고 말이다.
나는 손목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9시 30분. 늦은 출근시간이건 떠나서 지금 당장 여자를 확인하러 오는 인간이 같은 직장 동료가 아니라는 데 내 모든 것도 걸 수 있다. 유치원 교사는 보통 여성을 채용하고 또 한 명의 여성이라면 제압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이미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아까 전 작업을 진행한 여파로 이미 충분히 지쳐있다. 게다가 방금 전 신발을 끄는 소리는 여성이 가질 수 없는 묵직함을 담고 있었다. 나와의 작은 게임에서 또다시 내가 승리했다. 저 상대는 내가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나는 재빠르게 부엌으로 다가가 창문을 확인해 본다. 불행히도 창문은 그대로 잠겨있다. 돌려서 열 수도 있지만 이걸 며느라 발생하는 소음은 책임질 수가 없다. 새시 사이에 가득 낀 먼지가 오랜 시간을 암시하며 엄청난 소란을 예고한다. 그제야 거실에 자리한 에어컨이 보인다. 불행히도 여성은 환기를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기사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뒤늦게 돌아오는 여성 혼자 늦은 저녁 다 새대 주택의 창문을 열고 환기하는 건 꺼려지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문을 발칵 열고 뛰어내릴까? 다세대 주택의 석조 계단에는 이어진 발코니가 있으니까. 아니, 그건 아까 전에 했어야 했다. 정확히는 - 철문을 여는 시점에 저질러야 맞았다. 안일했다. 그 발걸음이 아래로 가거나 1층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다니.
이제 발걸음은 점점 더 가까워져 온다. 주변에 있는 뭐라도 들고 있어야 하나? 이대로 가장 쓰기 싫은 귀찮은 수를 써야 하나? 다행히 나는 여전히 주방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벽에 걸린 가위뿐 아니라 식칼도 착실히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성가신 건 내 취향이다. 나는 피를 보면 현기증을 느낀다. 라텍스 장갑으로 훔쳐내는 땀 정도는 내가 어찌할 수 있지만 비산흔과 비명, 칼을 쥐는 법과 운용, 과하게 힘을 줄 경우 발생하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절상과 그에 대한 변명까지 생각하는 게 고통스러울 만큼 귀찮다.
그 사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부엌 구석에 숨었다. 망할, 현관문을 잠가두는 걸 깜박했다. 소리가 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서 어디론가 조용히 빠져나갈 생각만 했지 애초에 진입로를 차단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문이 잠겨 있었다면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눌렀을 거고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뉘었을 것이다. 하나는 다세대주택에 사는 다른 이웃이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른 하나는 속수무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망설이는 사이는 나에게 이곳을 빠져나갈 최적의 수단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멍청하게, 초보적인 실수였다.
나는 어딜 들어가는 것만 생각했지 내가 나가는 것에 대해선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순하다. 이번 것만 제대로 넘어가면, 난 앞으로 문을 닫고 일을 수행할 생각이다. 까다로운 단계가 하나 더 추가된 것뿐이다.
그대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늘어진 먼지를 그대로 쓸어버리는 현관문 소리가 유난히 불쾌하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어떤 무기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주방문 뒤편에 그대로 숨어버렸다.
발걸음은 이제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신은 그대로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 시작했다. 직관과 예감이 뜻하지 않은 안정감을 내게 선사한다. 상대는 남자가 맞다. 둔탁한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보통 집주인을 알았다면 이름을 불렀을 테지만 남자는 아무 소리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면식인은 아니다. 그 또한 이곳에 발을 들인 나와 같은 이방인이며, 내가 만만하게 제압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 와중, 치지 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그 자의 주머니 속에서였다.
“본부, 여기는 서부 강력. 아무래도 사건 현장을 발견한 것 같다. 출동 요망. “
나는 그 소리에 대뜸 부엌에서 뛰쳐나갔다!
남자가 나를 보고 놀란 눈을 하지만 잠시 후 -
“왜 이렇게 늦어요, 혼자 와서 보느라 고생했네.”
”뭐야, 정형사. 왔으면 티 좀 내.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김 형사가 심장을 잡으며 말한다. 나는 팔짱을 끼다 자연스레 재킷 주머니로 라텍스 주머니를 구겨 넣었다.
”출동 요청은요? “
”방금. “ 김 형사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부러 그를 안방으로 안내하며 상황을 설명한다. 이제 막 불혹을 넘긴 그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내 브리핑을 듣는다. 아무렴, 10년 근속 형사의 정성스러운 브리핑이다. 치고받고 싸워온 시간만 5년이 넘는다. 내가 저질러 온 걸 모른 건 이제 겨우 1년 되었다.
”아오, 또 이 근방이야. 범행도구는 이번에도 희생자 가방인가? “ 그가 현장을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 중얼거렸다.
“포렌식이 봐야 하는데 뭐 그래 보이네요.” 나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쉽다. 목에 새겨져 있던 동그라미 세 개가 어느덧 옅어졌다. 나는 자연스레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은 라텍스 장갑을 더욱 꾹 밀어 넣었다. 내 손에 새겨진 붉은 자국이 서서히 옅어지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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