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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y 14. 2021

제 머리맡에 걸어둘 그림(사진) 추천 받습니다

부탁드려요

이사한 집에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벽지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스스로 벽지를 고를 수 있었던 나이부터는 항상 사방이 하얀색으로 된 방에서 잤다. 그런데 이 집 안방의 벽은 회색에 가깝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실크에 무난한 직사각형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무늬지만,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내게 숙면의 조건은 이런 거다. 햇빛을 거의 완벽하게 가리는 커튼, 사방이 하얀 벽지, 가구는 너무 빽빽하지 않게, 그러나 너무 허전하지도 않게 놓여 있어야 한다. 마치 내가 원하는 나와 타인의 간격만큼 적당하게 말이다. 침대에서는 나무 냄새가 나면 제일 좋겠지만 통원목이 아니라 분쇄한 나무를 꾹꾹 눌러 코팅한 나무라고 해도 색깔이 나무 색깔이기만 하다면 잠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집 천장은 어딜 가나 하얀색인데, 왜 벽지 색은 집마다 다를까. 내 방도 천장지 색깔은 새하얗다. 천장지가 사람의 얼굴이라면, 벽지는 옷일까.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옷을 입는 걸까. 가끔 새하얗게 벗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 나는 즐거운 걸까. 아무튼 이런 색의 벽지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자려고 누워서 등 뒤에 있는 벽지를 생각하면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란 말이다.


내가 몸에 문신을 하지 않았던 이유와도 비슷하다. 나는 새하얀 몸을 건드리기 싫었다. 그 원초적 욕구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보다 강했다. 그것이 그림을 그리기 전의 미칠 듯한 설레임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어플을 켜서 하얀 액정 위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검정색 글씨를 쓴다. 이런 색의 배합은 내게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아무도 정복하지 않은 땅에 내 족적을 처음으로 남기는 느낌이랄까. 눈밭을 밟는 느낌이다.


하얀 공간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은 이상하다. 미술 전시장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하얀색 간격에는 항상 마음이 들뜨는 편이니까 말이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틈은 작품 간의 관계일 것이다. 작품은 사각형 액자 속에 담겨 있지만 사실은 사각형 바깥으로, 사각형에 존재하는 네 개의 꼭짓점을 타고 전진할 것이다. 그것은 동서남북 무한의 세계로 흩어진다. 그렇게 확장하는 그림의 성격 때문인지 어쩔 때는 작품과 작품이 아예 딱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방이 미술 전시장은 아니다만, 그냥 무작위적으로 생긴 침대나 책장 같은 것을 공간이 잘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냥 하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색은 내게 그런 의미가 된다. 아무런 문신도 없는 몸이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얀색이 아닌 종이는 없을 것이다. 종이에 색이 생기면 색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것은 큰 문제다. 숙면을 위해서는 도배 기사를 부르고 방에 들어찬 가구를 전부 꺼내고 벽지를 새로 발라야 하나. 냄새가 빠질 때까지는 다른 방에서 자야 할 것이다. 그 편보다는 차라리 그림 하나를 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맡에 말이다. *숲 그림을 찾고 있다. 사진이라도 좋다. 바다 말고 꽃도 말고 숲이면 좋겠다. 풀은 하얀 종이만큼이나 나를 구제해주는 색깔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하나를 건다고 해서 이 공간이 달라질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난생처음 하는 실험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또 이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도배를 하는 것보다는 위험 부담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림을 골라야겠다. 하늘은 거의 보이지 않아야 한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모두 초록인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야 한다. 마치 숲처럼 말이다. 벽면을 그림이 압도하려면 최소 가로 길이 140센티에 세로 길이 90센티여야 한다. 그런 작품을 어떻게 찾지. 커다란 숙제가 생긴 것 같다. (가격은 삼십만 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렴한 가격에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머리맡에 숲 하나를 걸고 창문에 암막 커튼을 설치하면 조금 숨통이 트일 만한 공간이 될까. 손때를 묻혀 쓸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에는 정말로 품이 많이 든다. 아가미 없는 물고기가 바닷속 깊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막힌 숨을 쉬는 느낌이 든다. 답답하다. 그래서 이 하얀 종이 위로 걸어온 거다.

*진짜로.. 제 머리맡에 걸어둘 작품 추천 받습니다.. 혹시 생각나는 작품 있으시면 저한테 추천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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