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아파트
<라따뚜이>를 보고 싶은 날이었다. 주차장을 걷다가 문득 그렇게 말했더니 남편이 그게 무슨 영화냐고 묻는다. 쥐. 쥐가 요리사가 되는 영화. 쥐가 요리사가 된다고? 응. 디즈니 영화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다룬다. 그래서 디즈니 영화를 좋아한다.
지금은 아파트 정원에 나와 있는데 팥죽을 잘못 끓인 것 같은 하늘 아래로 빨간색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그 아래에는 티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이런 아파트에 살게 된 건 정말 행운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팥죽 잘못 끓인 것 같은 색의 하늘이 뭔지 아는 것도. 나는 우리 엄마에게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배웠다.
나쁜 딸은 어버이날에도 연락을 못했지. 어제는 뒤늦게 카톡을 보냈다. 꼭 높은 곳에 살고 넓은 곳에 사는 게 성공이 아니란 걸 알아. 우리가 이 집에 온 것도 어떤 성취라면 성취 중 하나겠지만 나중에 더 좁은 집에 간다고 해서 더 못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다 엄마를 잘 만나고 엄마한테 배운 마음이라는 걸 많이 느끼는 날들이야. 엄마는 엄마가 철이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글쎄 나는 엄마가 세상의 작은 사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아름다움이 뭔지에 대해서 배우는 유년기를 보낸 거 같아.
그래서 라따뚜이가 보고 싶었나. 쥐가 요리사가 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늘 그런 걸 바라고 있기도 하다. 거지와 부자가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거. 보통 부자 말고 진짜 부자. 보통 거지 말고 진짜 거지.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서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란 서로의 눈빛이고 막 그런 거. 그런 세계에 가고 싶다고 아주 자주 생각한다.
내가 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성공은 그냥 책 한 권 내는 거다. 책 한 권 내서 책을 조금 팔고 내 책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거.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을 적지만 가지고 있다. 이것과 책을 내는 것의 차이라고 한다면 책을 내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거. 나는 그냥 계속 이렇게 살고 싶은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팥죽을 잘못 끓인 것 같은 색이라는 말은 오 년 전에 엄마가 했다. 그 말을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다. 이런 대화였지. 엄마, 오늘 하늘이 무슨 색으로 보여? 팥죽 잘못 끓인 색. 비밀인데 그날 이후로는 침대에 누워서 빗소리를 들으면 지붕으로 팥죽이 뚝 뚝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것이 삶의 신비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