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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y 18. 2021

'우주먼지 병'에 걸리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꾸준함이라는 재능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 각자의 분야에서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만 보고 있어도 삼 분 짜리 영상 하나에 어떻게 이렇게 알찬 정보와 재미와 본인의 색깔까지 잘 담아내는지 놀랄 때가 있다.


어떤 영상은 자막을 그대로 글로 풀어내면 꽤 괜찮은 에세이 한 편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좋은 소스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지 않았지, 생각하게 될 때가 있었다. 실제로 그 영상을 만든 사람이 만약 글쓰기에 뜻을 가지고 있었다면 작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영상을 찍지 않듯, 아마 그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사람마다 무엇을 지루해하는지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영상 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그냥 답답하게 느껴진다.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이라든가, 카메라로 찍을 때부터도 편집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라든가, 그냥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나 목소리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별로 내 취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거꾸로 생각하면, 아마 영상을 찍는 사람들은 종이 위에 글자로 자기 표현을 한다는 스타일 자체를 지루해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결국 글쓰기든 영상 제작이든, 재능의 문제라기보다는 꾸준함의 문제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분야에 특출 나게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다들 비슷한 재능과 비슷한 똑똑함을 가지고 각자의 것을 해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가를, 그 삶의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매일 무언가를 써나간다고 해서 무엇이 될 수 있다거나, 곧 인정받을만한 성취가 찾아올 거라고 믿거나, 언젠가는 돈이 될 거라고 기대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생을,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며 살아낼 수 있다는 자체로, 꽤 괜찮은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지구를 멀리에서   있는 어떤 절대신은 조그만 일꾼들이 군데군데 퍼져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지 않을까. 중학교  '우주먼지 '이라는 말이 학교에서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우주의 먼지가   같이 무기력하고 공부를 지속할 의욕이 샘솟지 않는 병이라고 학교 친구들끼리 말하던 것이었는데, 요즘의 나는 오히려 내가 우주먼지 에 걸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때가 있다.


그냥 나는 하나의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 사실을 마음속 깊이 믿을수록 어쩌면 내 일에 그저 집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성취는 그다음의 일이라고, 그냥 내 일을 해나가고 싶다고, 거기에 있어서 어떤 한 줌의 의심도 허락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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