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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Dec 29. 2022

트리보다 빛나는 것, 스테이크보다 맛있는 것

내 삶의 전구가 된 것

나로서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올해가 다 흘러가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끌벅적한 파티나 풀메이크업은 커녕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기저귀를 열 개쯤 갈면 하루가 다 갔구나 시간을 가늠하던 나날이었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정신을 뺏긴 채로 이렇게 많은 날들이 흘러가 버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십 대 시절의 언젠가를 생각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의 기준이었다. 그것이 당연했고 다른 선택지는 아예 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는 남편과 단둘이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내 자유를 즐기는 일이 필요했고 지금의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시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간만에 아기 없이 나온 식사 자리가 빈 접시처럼 허전하고 이상했다. 그냥, 칼로 스테이크를 썰긴 써는데 별로 자유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별 맛도 없고 괜히 아이 사진만 뒤적거리다가 그냥 아이를 데리고 올 걸 후회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와 아기와 마주 앉아 블루베리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잠깐 떨어졌다고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 식사에 잘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해월이의 입에 블루베리를 한 알 넣고 내 입에도 블루베리를 한 알 넣는다. 그렇게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해월이는 내 표정을 따라하고 나는 해월이의 표정을 따라한다. 그렇게 블루베리 몇 알을 먹는데 배가 꽉 차면서 기분 좋게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눈빛 같은 것이 내 삶의 의미가 될 줄은 몰랐었다. 내가 초대한 적 없는 것들이 비집고 들어와, 아픈 살을 뚫고 내 삶의 전구가 되어, 일상을 빛내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어쩔 때는 그런 순간이 빛나는 트리보다 더 빛나 보인다.

이제 나는 인정하고 있다. 빛나는 것은 저마다 다르고 시절마다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이런 어른이 될 줄 몰랐다. 내가 생각했던 행복이나 평안의 기준보다 더 넓은 곳에 와 있는 스스로를 느낀다. 자꾸 더 먼 곳으로 가는 삶은 어떨까. 지금은 모르는 의미를 내일에는 또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깨어지고 커지고 싶다. 꼭대기까지 빛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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