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은
깨진 유리 조각은 날카로울까, 보석처럼 빛날까
우리 집 샹들리에가 좌로 우로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게 꼭 내 마음 같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두껍고 손바닥 만한 유리 자재 하나가 천장에서 식탁으로, 식탁에서 바닥으로 두 번 곤두박질치더니, 완전히 부서진 것이다. 샹들리에가 박살이 나던 순간에는 내 마음 안에서도 무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막 잠에 들려던 아기는 쨍그랑 소리가 나자마자 그것보다 더 커다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 손에 들린 아이 앞에서 담대한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 사고가 있었어. 우리 아기 다시 자러 들어가.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몇 년 전 한강 시인의 '괜찮아'라는 시를 읽은 이후로 내 마음속 유행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괜찮다고 말하자마자 괜찮지 않음이 더 깨달아지는 순간도 있다.
남편은 별 것 아니라고 했다. 그저 유리 접합 부분이 점점 헐거워지고 있었던 거라고 했다. 그리고, 괜찮다고 했다. 남편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순간에는,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토닥이는 순간보다 더, 괜찮다. 남편은 유리를 손으로 쓸고 또 쓸며 바닥에 굴러 다니는 유리 조각이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그 커다란 손이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데 바닥에 내 심장이 붙어있는 것 같았다.
샹들리에는 바닥에 떨어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천장에게 배신감을 느꼈을까. 도착한 바닥이 생각보다 안락하다고 생각했을까. 유리가 떨어지기 전의 천장처럼, 샹들리에처럼, 나는 그 모든 몫을 붙잡고 떨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모습이 그렇게 위태롭게 보였다. 깨어지고 나서야 말이다.
깨진 유리가 나라고 생각하니 유리의 그 날카로운 조각이 나를 찌를 것 같지는 않았다. 쨍그랑, 소리가 어딘지 속이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했다. 나는 연약하지도 강인하지도 않은, 그저 나인지도 모르겠다. 조각이 되어서도 반짝거리는 유리가 그 증거 같았다.
부서진 마음에서도, 공허한 마음에서도, 희한하게 더 사랑해야겠다는 마음 하나가 남는 것 같았다. 그게 다행이었다. 내게 찾아오는 모든 일들은 나를 돌보기 위해 찾아온 일들 인지도 모르겠다는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가녀린 전선 몇 개만 남아 버린 샹들리에가 그리 못나 보이지 않는다. 깨진 샹들리에 덕분에 내 마음이 드러난 거라면, 고맙구나. 나는 내 못난 모습을 사랑해 볼게. 며칠 새 내 안에 깨져 있던 것들을 샹들리에와 함께 보내 주었다. 우리 집 쓰레기통으로, 더 큰 쓰레기장으로, 멀리멀리 보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