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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Oct 11. 2023

나를 지켜주는 한 겹의 마법

스쿼트 하면서 발라드 음악 듣기

오늘 운동하면서는 이수영 노래를 들었다. 어제는 조성모 노래를 들었다. 이번 달에 가장 많이 들은 운동 노래는 YB의 '흰수염고래' 정도였다. 역시 운동 전용 음악으로는 약간의 파이팅이 있는 노래가 제격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하게 됐다.

헬스장에서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하는 사람. 평범한가? 나는 원래,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보통 헬스장에서 나오는 음악은 비트가 쪼개져 있고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포함되어 있다. 보컬도 고음을 많이 쓰는 편이고 리듬 자체도 빠르다. 아마 그런 음악이 운동 능력을 높인다고, 혹은 힘을 짜내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헬스장의 공간과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헬스장 픽 음악을 듣고 있으면 힘이 빠지고 동작을 하기가 싫어져서 꼭 에어팟을 한 겹 더 낀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나 혼자만의 선곡을 해 놓으면 그제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몸은 결국 마음이어서, 결국 내가 듣고 싶은 음악에 마음이 움직이면, 그것이 몸의 성과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 빠른 음악을 들으며 요가를 하게 될 때도 있고, 발라드를 들으며 30킬로를 얹고 스쿼트를 하게 될 때도 있다.

내 몸의 움직임의 속도를 거울로 보면서, 동시에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다 보면 묘한 장면이 떠오른다. 꼭 여자주인공이 전속력 달리기를 하는 영화 속 장면 ost로 발라드가 삽입되었다거나, 아주 고요하게 식사를 하는 장면 ost로 댄스 음악이 삽입되었다거나 하는 약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신파적인 이미지보다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 묘사에 정성을 쏟듯,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전속력 달리기를 하는 장면 자체가 아니라, 누구에게 달려가는지, 그 누군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인지를 알면, 관객들도 그 장면에 보다 더 적절한 배경음악을 깔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어떤 기구를 들고 어떤 동작을 어떤 빠르기로 하느냐보다, 동작을 할 때 내가 어떤 마음이며, 횟수에서 한계가 왔을 때 나를 가로막는 그 마음을 주시한다. 결국 다음 세트를 해내게 하는 건 단순히 "힘내!" 말하는 것 같은 댄스 음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은 가사에, 부드러운 선율이 흐르는, 딱 내 취향인 음악일 것이듯이 말이다.

아까는 아령을 들고 팔을 쭉 펴는데, 내가 지구라도 들어 올리는 듯 힘찬 마음이 났다. 곡이 자동으로 넘어가다 보니 귓가에는 카더가든의 '나무'가 재생되고 있었고, 나는 보컬이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그 에너지 자체에 힘을 얻어 동작을 끝마쳤다.

사실 삼 분짜리 노래 한 곡에는 무수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사도 잘 모르고 듣는 팝송에 마음이 두근거릴 수도 있고, 애틋한 이별 노래이더라도, 내 어떤 과거의 마음이 위로받는다는 마음이 동하면 힘이 벌쩍 나서 스쿼트를 30개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그러니까 음악의 장르를 범주화에서 나누는 것으로는 그 음악에서 본질적인 부분을 거의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사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여성, 기혼이며, 딸이 한 명 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꿈은 무엇이며 언제 가장 깊은 슬픔을 느끼는 사람인지 그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나는 살면서 끝없이 본질 속으로 가고 싶다. 열매에 껍질과 과육이 있으면 정중앙 근처에는 씨가 있을 것이다. 달콤한 과육만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씨앗을 촉촉한 땅에 심어 새싹부터 나무까지 자라나는 광경을 보고, 듣고, 기다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마음인 것 같다. 오늘 운동을 할 때에도 내가 꼭 듣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게 된 것은. 이수영, 조성모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꼭 이 노래를 불렀는데 하며 추억에 잠겨 보았다. 내가 이 반주를 참 좋아했지, 그런데 지금 들어도 좋네, 이 반주에는 도대체 어떤 특성이 있지, 이건 무슨 악기지, 하며 내 의식의 물줄기를 최대한 자유롭게 흘려보내려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운동을 하면 정말 내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 아주 깊은 휴식 속으로 빠져든다는 감각이 있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헬스장 픽 댄스 음악을 들으며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뚝딱거릴 때의 나는, 무언가 조급하고 덜 창조적이다. 헬스장에서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아직 살도 덜 뺐는데 괜히 딱 붙는 요가복을 입었나 걱정한다거나, 모르는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 위축되는 감정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지켜주는 한 겹의 에어팟을 더 끼면, 주변은 모두 블러 처리되고 거울 앞의 나만 남는다. 옆에 몇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게, 내 몸을 내 스스로 움직이며, 몸을 움직일 때 따라 움직이거나, 때론 역행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가만히 있는 마음 줄기들을 바라본다. 주변이 아닌 나를 찾는 힘은 참 많은 대상들로부터 얻을 수 있겠지만, 우선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 내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건 곧 살기 좋아진다는 뜻,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니까. 가만히 누워서 쉬는 것만이 휴식이 아니듯이, 내 속도대로 가만히 누리는 일상에서도 진정한 휴식과 자유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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