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종이책 대신 리더기, 그런데 왜 허전할까

책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 변해도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

by 서나연

내가 이북 리더기를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어서였다. 책을 사긴 많이 사지만, 읽는 속도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딜 갈 때마다 종이책을 들고 다녀도 두세 장을 읽고는 덮기 일쑤였다. 책장은 몇 년째 정리가 되지 않고, 읽고 싶은 책들만 머리맡에 쌓여 있었다.

IE003391271_STD.jpg ▲내가 이북 리더기를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어서.(자료사진) ⓒ dipdevices on Unsplash

그러다 한 달 전, 갑자기 김민섭 작가의 책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싶었다. 밤 10시, 배송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당장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이북으로 결제했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틀 만에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책이 재미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이북의 압도적인 휴대성 때문이었을까. 무엇이든, 이렇게 책을 빨리 읽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필 그즈음 언니는 커다란 모니터를 사겠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 모습이 부러웠던 걸까. 나도 덩달아 무엇 하나를 사고 싶었다. 그래, 어쩌면 내 물욕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종이책은 너무 아름답지만, 무겁고, 비쌌다. 아니,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않는 내가 혐오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종이책을 들고 다니지 말고, 이북 리더기에 다 담고 살자고 결심했다. '밀리의 서재' 구독 서비스에도 가입했다. 종이책을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며 책장 한편에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없어졌다. 가격도 저렴했고, 공간도 차지하지 않았다.


아, 드디어 종이책에서 해방이구나. 이북 리더기가 배송되던 날, 벼르던 책을 대여하면서 생각했다.


이 좋은 걸 왜 이제 샀을까.


무거운 택배 없이, 클릭 몇 번이면 화면 속 디지털 책장에 책이 쏙 들어왔다. 손에 콤팩트하게 들어오는 글씨, 그 두꺼운 종이를 데이터로 옮겨낸 이북 리더기는 든든하기만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밤이었다. 자기 전에 한 시간만 책을 읽어야지 하고 이북 리더기를 켰다. 책장을 넘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대신 물리 버튼을 또각또각 누르면서.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애인은 어디 갔지?


비유였지만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엄청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못하고 영상통화를 하는 느낌. 화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서러워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비록 책을 잘 읽지 않아도, 종이책을 정말 좋아했구나. 어쩌면 종이가 좋아서 책을 샀던 걸지도 모른다. 바짝 눌려진 종이에 거세게 밑줄을 긋고 싶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손끝으로 넘기고, 책을 두 손으로 크게 들고 싶었다.


왼손에는 '읽은 만큼의 종이'와 오른손에는 '안 읽은 만큼의 종이'를 들고, 책의 한가운데 서 있고 싶었다. 아마도 책에도 영혼이 있는 것 같다. 이북 리더기의 글씨는 텍스트일 뿐, 책은 아니라는 느낌.


나무를 베어내 재료와 섞어 한 겹 한 겹 오려낸 종이야말로 책의 숨결이 아닐까. 사람에게 뼈와 혈관, 심장이 있듯, 책에게는 종이가 있는 것 아닐까. 종이 없는 문장이 가능하긴 할까.


똑같은 문장을 읽어도 종이책과 이북 리더기에서의 독서 경험은 완전히 달랐다. 종이로 읽으면 문장을 '만지는' 느낌이 들지만, 이북으로는 그게 안 된다. 문장이 무형의 것이라 여겼지만, 종이 위라면 문장은 세상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책을 쓰는 일은 위대하다. 나무를 베고, 종이를 만드는 일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종이책은 독서 행위에 권위를 부여한다. 이북이 널리 보급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그렇다. 나도 누군가 내 책을 종이책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액정 화면 위가 아니라 종이 위에서, 문장을 '만지듯' 읽어주기를. 그것이 문장과의 스킨십 같고, 더 '독서다운'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장이란 무엇일까. 독서란 무엇일까. 책을 읽는 경험은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연애하듯 문장을 느끼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매개체가 바로 종이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북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이다. 무엇으로 읽는지보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하고, 그 감각을 그리워한다. 이북 리더기로 책을 읽다가도, 종이책의 사랑스러움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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